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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해우소]"청소노동자 사망사건, 서울대판 '설국열차'"

황효원 기자I 2021.07.18 00:05:00

청소노동자 '힘들다' 문자에 "늘 억울하시겠네요^^" 답한 관리자
유족 "불이익 두려워 직장 내 갑질 알리지 못했을 것"
괴롭힘 금지법 2년 맞았지만 신고 되레 꺼리는 직장인들
33% "갑질 당하고 있다" 반복되는 비극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현장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TF(태스크포스)는 ‘직장 갑질’ 논란에 “청소노동자들이 느꼈을 모욕감을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주년을 맞았지만 ‘갑질’을 참거나 모른 척 했다는 직장인이 법 시행 후 되레 더 많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사진=JTBC 캡처)
“너무 힘들다” 호소에도…

“마치 설국열차 같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기차 칸에서 살면서 다른 기차의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15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소속 의원들이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서울대학교 현장을 점검한 뒤 한 말이다.

이해식·이탄희·장철민 의원 등은 이날 오전 서울대학교 행정관 4층 대회의실에서 오세정 서울대학교 총장, 서은영 학생부처장 등으로부터 사건 관련 보고를 받았다.

이탄희 의원은 “전날 상임위원회에서 이 사건 관련 논의를 했는데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며 “서로 다른 두 개의 기차 칸에서 살면서 다른 기차의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A(59)씨의 사망 당일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함께 생전 관리자와 나눈 문자 메시지가 공개됐다.

CCTV 영상에서 A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기숙사 건물에서 홀로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모아 1층까지 옮겨야 했다. A씨는 기숙사 건물 복도에서 빗자루를 들고 상당량의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 등을 모은 뒤 힘겹게 끌고 내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A씨는 생전 늘어난 업무 강도로 관리자에게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갑질 피해를 신고할 창구가 있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A씨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관리자에게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늘 억울하시겠네요. ○○○ ○○○ 일 안 하고 놀고 있는데 선생님만 고생하시네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를 두고 유족 측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직원들은 잘못 보이면 어려운 곳으로 배치되는 두려움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관리자는 지시 사항이 잘 이뤄지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A(59)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2년…“괴롭힘·사각지대 여전”

시행 2주년을 맞은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업장 규모나 고용 형태 등 이유로 적용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뚜렷하다는 노동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5일 법 시행 2주년을 맞아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김유경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일터 민주주의 구현’과 ‘노동자들의 인권 존중’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사각지대의 사례를 △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 가해자와 소속이 다른 하청·용역·위탁노동자 △ 가해자가 사용자의 친인척인 가족회사 △ 노동성이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프리랜서 등 4가지로 분류했다.

그는 “모든 사례를 합치면 일하는 사람의 최소 절반 이상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대응이 불가능한 셈”이라며 “오는 10월 시행되는 개정법에서 사용자 친인척 갑질에 관한 제재 조항 등을 마련한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일터에서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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