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직원 A씨는 최근 회사 대표로부터 갑작스러운 폭언과 폭력을 당했다. 대표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서류를 보고 A씨를 불렀다. 대표는 서류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리를 쳤고 A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책상을 차 넘어뜨려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와 서류들이 쏟아졌다.
분이 덜 풀린 대표는 A씨에게 책을 던지며 욕설을 계속했고 공포에 질린 A씨는 그 길로 사무실을 뛰쳐나와 회사를 그만뒀다. 경찰에게 대표를 폭행 혐의로 신고했지만 회사 쪽은 경찰에 폐쇄회로(CC)TV 영상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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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3.5%가 경험한 ‘우리 회사 송언석’ 제보 이어지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반이 흘렀지만 ‘직장 내 갑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직장인 13.5%가 폭행·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4.7 재·보궐선거 개표 상황실에서 당직자를 상대로 발길질과 욕설을 한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을 계기로 비슷한 제보 사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유형으로 폭행·폭언·모욕·사적 용무 지시·업무배제 등을 명시할 뿐 유형이 협소해 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는데 상당한 혼란을 주고 있다.
실제로 괴롭힘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과 유형별 명시 범위도 좁아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지난해 9월 30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5658건의 진정사건 중 80.7%가 취하하거 나 단순 행정 종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단체는 “송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당직자를 폭행한 사건이지만 송 의원과 당직자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며 “일반 기업에서도 ‘우리 회사 송언석’의 폭행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폭행이나 폭언이 신고된 사업장을 특별근로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제8조(폭행의 금지)에 따라 송 의원과 당직자 사이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송 의원이 특수관계인이기에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법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직장갑질119 김하나 변호사는 “상급 직원이 하급 직원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사후에 피해에 대한 민사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그 경우 행위의 위법성과 손해의 정도를 입증하는 과정이 피해자에게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단 피해를 입으면 이에 대한 문제를 즉각 제기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대처방안”이라고 조언했다.
◇50대 “줄었다”는데 20대 “그대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20대와 50대의 온도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대 응답자 51.8%와 30대 49.0%는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도 ‘직장 갑질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반면 40대 60.3%와 50대 63.7%는 ‘갑질이 줄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들이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것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조직 문화 범위가 달라 발생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3월 단체에 민원을 제기한 직장인 B씨는 “일 진행 상황에 대해 공유해달라고 하자 상사는 ‘내가 윗사람인가 보고를 왜 하느냐’고 했다”면서 “가만히 있어도 불안감이 심해지고 있다. 여전히 인식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직장갑질119 김유경 노무사는 “다수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접할 때 직장 상사는 ‘라떼는(나때는 말이야’라면서 가해사실을 부정하거나 맞대응한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법을 제정한 배경이 왜곡된 조직문화와 상명하복식 위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0월14일부터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 가해자에게는 최대 10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