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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동시대성을 향한 집념과 결실

김보영 기자I 2022.03.17 00:00:00

심사위원 리뷰
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편견에 벗어나 거짓없이 맞설 수 있는 용기
'다양성'과 '인간의 연결성'에 대한 고민

(사진=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류주연 극단 산수유 대표] 극단 돌파구의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 2015년 초연 후, 2022년 7번째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단순한 앙코르는 아니다. 초연과는 다른 무대 개념, 공연 형식, 주제 의식을 갖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 대입을 준비하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는 울분을 토할 만큼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경쾌하고, 흥미롭게 탄력적으로 전개된다.

무대는 삼면과 바닥이 모두 흰색이다. 철봉, 큰 거울, 의자, 옷걸이 등등의 몇 가지 소품이 벽에 붙여 놓여있고, 등장한 배우들은 먼저 자기가 어떤 배역을 맡았고, 본명은 무엇이며, 무대, 음향 등은 무엇이 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 비로소 이어지는 공연에서 배우들은 완전한 퇴장 없이, 오픈형 등퇴장으로 극을 진행한다.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배우들은 무대 벽면 쪽에서 장면을 보며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가 등장한다. 즉 모든 배우들은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있다. 대기 중인 배우들은 직접 장면에 관여하진 않지만, 주변 인물처럼 작은 리액션들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식은 관객과 등장인물간의 거리를 좁히고, 관객을 사건의 장본인, 혹은 목격자로 만든다. 관객은 네 번째 흰 벽면에 기대어 다음 등장을 기다리는 배우가 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작품의 주제의식은 무대와 공연 형식에서 명쾌하게 전달된다.

남자다움을 표상하는 주인공 준호(오해영)는 사실 여성용 레오타드를 즐겨 입는다. 사실이 드러날 경우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도,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계속 살 수도 없을 만큼 창피한 일임을 알기에 철저히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있다. 그러다 이러한 비밀을 희주(윤미경)에게 들키고 만다. 왕따인 희주는 준호의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2인 1조 댄스를 준비하는 체육 수행평가 과제의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고, 둘은 함께 발표를 준비한다. 이를 통해 준호는 왕따였던 희주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자신에 대한 편견에도 거짓 없이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남자가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는 걸 즐기면 ‘비정상’이고, 여자는 ‘안나수이 손거울’ 같은 예쁘장한 소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이런 종류의 생각이 편견에 사로잡힌 젠더 감수성임을 오늘의 관객들은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 혹은 감성은 때로 일치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준호가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객석에서 들려온 웃음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다.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은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어색함을 느꼈다면, 심지어 혐오 내지 역겨움을 느꼈다면 우린 아직 편견 속에 있는 것이다. ‘안나수이 손거울’을 보고 ‘여성적’이라고 느끼거나 말하게 되는 것 또한 우리 안의 편견이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이러한 편견이 결단코 없어져야 할 것인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의 동시대적 의미와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젠더 문제나 다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상하기 이전이던 2015년에는 ‘부모의 욕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춰 공연했다고 한다. 2022년의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다양성’에 대한 고민, 서로 연결된 인간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데 방점을 뒀다. 오랜 시간을 지속적으로 공들여, 작품의 동시대적 가치를 발견하고 발굴한 극단 돌파구의 뚝심은 박수칠 만하다.

(사진=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사진=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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