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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토크]기자·국회의원·방통위원장..원칙으로 관통한 이경재

김상윤 기자I 2013.12.17 00:00:15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인터뷰
"방송공정성 시비거리에서 벗어난 게 의미 깊어"
"공영방송, 공공재원 확보로 자본 독립이 원칙"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인터넷 역기능도 줄여야"
"6월 보궐선거 나갈 생각 없어"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언론 방송 공정성을 위해 노력한 것이 올해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김현아 김상윤 기자] 신문기자, 국회의원 그리고 방송통신위원장. 언론인 출신으로 입법부와 행정부를 두루 거친 이경재(73) 방송통신위원장은 기자 시절을 인생의 최고 순간으로 꼽는다. 괴로울 때도 잦았지만 통쾌하고 자부심이 가득 찼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1980년 해직기자가 됐다. 당시 쓰라린 경험이 지금 느끼는 ‘방통위원장의 원칙’을 만들어 줬다.

“기자하면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웠던 만큼 방송에 개입하지 않고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습니다. 방송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해직된 언론인 19명의 처리에 대해 묻자 ”누구를 자리에 앉혀 달라는 것도 인사개입이지만, 복직시켜달라는 것도 인사개입”이라며 “해직 언론인 문제는 회사 자체에 맡긴다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해직 문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방통위원장이 복직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 선례가 생기면 공정성 시비가 끝없이 확대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저는 부드러운 남자지만(웃음) 원칙은 확실히 한다”고 했다.

◇“공영방송이 광고하면 저질화된다”

KBS이사회는 최근 32년간 동결된 방송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역사에 남으려고 한 건 아니고, 공공성 측면에서 광고를 운영하는 공영방송은 결과적으로 저질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경재 위원장은 “수신료 인상으로 공적재원을 확보해 공영방송이 제대로 된 청정방송을 할 수 있는 게 방송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수신료 인상안은 야당이사가 빠진 채 여당이사만 단독으로 의결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라는 오명도 있다. 국회를 통과하려면 야당이사가 주장한 KBS의 방송공정성 확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위원장은 “반대쪽에서는 날치기라고 하지만 여당 이사도 6개월간 합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면서 “KBS가 불공정하다고 하는데, 만약 불공정하다면 시청률이 떨어질텐 데 지금처럼 잘 나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KBS경영합리화라든지 확실한 광고 축소 여부가 남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원론과 철학이 있더라도 우리 사회에 충격이 될 수 있으니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현재 연간 6000억 원의 광고물량도 3단계로 2000억 원씩 줄여나가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만약 광고시장이 좋아져 전체 광고규모가 늘어나 8000억 원이 된다면, 다음 수신료 인상 때는 절반인 4000억 원을 줄이면 된다는 얘기다.

◇“진실과 팩트는 다르다…이해관계로 시시비비 안타까워”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공동의 방송산업발전종합계획이 나왔지만, 지상파 방송사는 폐기하라고까지 주장한다. 위원장의 해법이 궁금했다.

그는 “방송산업발전이니까 산업적 측면은 미래부가 한 것이고, (방송은) 산업만 보면 안되니 방통위도 했는데 우리가 문제 제기한 게 제동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그런데 초안을 갖고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데, 최종안이 아닌 초안으로 문제 제기하면 뒷다리 긁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하우스푸어라도 과외는 시킨다…MMS는 무료 교육용”

이 계획에는 지상파다채널 서비스(MMS)를 허용할 수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위원장은 “종편을 많이 허가해서 방송이 어지럽다고 하는데 KBS 5개, MBC 5개로 늘어나면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면서 “MMS는 기술발전이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KBS EBS에서 무료로 할 수 있는 교육, 장애인, 남북문제 등에 한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힘들게 월급을 벌어도 하우스 푸어가 되고 융자받아 이자 갚느라 정신없어도 자녀 과외는 다 시킨다”면서 “100만~150만 원의 과외비가 우리 국민을 압박하는데, EBS에서 MMS를 통해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도 교육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종합편성채널은 중소채널을 죽이는 MMS 전면 허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팩트라고 하더라도 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인터넷 댓글로 국회가 마비되는 세상…윤리교육이 중요”

이 위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선플운동본부’ 활동을 했다. 299명 국회의원 중 134명이 참여해 인터넷의 역기능을 줄이는데 앞장섰다. 가능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풀지만 심각한 폐해가 있는 부분은 국민적으로 윤리교육캠페인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내년에 방통위에 인터넷윤리과를 신설할 계획이다.

“댓글 문제로 국회가 마비상태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를 넘어 국가 간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 관중들이 한국 선수만 나오면 야유했습니다. 인터넷 댓글 문제 탓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가 간 외교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내년 1월 중국을 방문해 인터넷 선플 운동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 협력을 꾀할 방침이다. 다음 세대에 인터넷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전 세대가 대비하고 준비하자는 차원이다.

KT 차기 회장 선출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이석채 전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측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너무 혼자 가로막고 있어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회장은) 창조 경제 측면에서는 유능했던 인물이었다”고 아쉬워했다.

◇“6월 보궐선거 나갈 생각 없어”

이 위원장을 따라다니는 소문 중 하나가 인천 서구 강화을 안덕수 의원의 후임으로 내년 6월 보궐 선거에 출마한다는 설이다. 이 위원장은 “아니야. 안 나가”라면서 “실리를 따져보면 4선 하나 5선 하나 사실 별 차이가 없다”면서 “만약 한다면 의장단에 들어갈 가능성 두고 해야지”라고 웃음 지었다. 이어 “정치판의 최고위원 이런 건 재주가 없고, 정치 투쟁보다는 ‘부드럽고 착하고 나누고 욕하지 말고 대우해주자’ 이런 소프트한 정치에 관심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단말기 불법보조금 영업정지 가능성 때문에 이동통신회사들이 떨고 있다고 했더니 “내가 부드러운 사람인데 이통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보고 ‘저사람 웃으면서 뒤통수 때리는 무서운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다”면서 “잘못된 것은 계속 (징계)해서 방통위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이모작 삼모작을 하면서도 지친 적이 없는 그다. 이 위원장은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늘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건강관리의 비결이며, 그래도 잠 못 들 때는 배드민턴을 한다고 했다.

후배 기자들을 위해 애정 어린 충고도 남겼다.

“기자 생활하면서 이상하게도 역사의 길목에 항상 있으면서 역사의 증인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는 자기 철학과 사관이 들어가지만 균형 감각 없이 쓰면 왜곡될 수 있는 만큼 진실을 보도하면서 정의를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게 그야말로 보람된 일일 겁니다.”

이경재 위원장은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 행복하다”면서 “무엇보다 늘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강관리 비결을 말했다.


◇이경재 위원장은=1941년 경기도 이천생인 그는 기자, 정치인, 방통위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1967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를 했지만 1980년 5공 출범 당시 신군부에 의해 ‘해직기자’가 된다. 해직 후 2년을 무직 상태로 견딘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들어가 1년8개월 정도 광고 관련 식견을 쌓았다. 1984년 복직했지만 동아일보에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월간지 ‘신동아’로 복직했다. 여전히 언론탄압이 극심했던 시절 2·12총선에서 신민당 돌풍 배경에 김영삼·김대중이라는 두 거목이 있다고 기사를 쓰면서 파문을 일으킨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연을 맺게 된 계기도 됐다.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비화물 ‘유신쿠데타의 막후’(1985.10~1986.1)을 연재한뒤 1986년 ‘유신 쿠데타’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1992년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의 공보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한다.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과 공보처 차관을 거친 뒤 1995년 15대 총선부터 줄곧 4선을 했다. 공보처 차관 시절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채널 사용사업자(PP) 관련 업무를 조율하면서 다채널 케이블TV 시대를 개막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때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선대위 부위원장 겸 미디어홍보위원장을 맡으면서 ‘원조 친박’ 계열에 합류했다. 독특한 의상과 음악으로 유명한 삐삐밴드 출신 가수 이윤정 씨가 그의 차녀다. 외손자가 이제 갓 돌을 지났는데, 밥상에 앉아 투정을 부릴 때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틀어주면 조용해지면서 화면에 집중을 해 “우리나라 콘텐츠 경쟁력이 놀랍다”면서도,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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