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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와 멀어 물류비 부담이 크고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두 나라가 아닌 북미·호주에서 주로 밀을 들여온다. 그러나 세계 밀 수출 시장 점유율 29%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수출이 마비 상태라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국내 A제분업체 관계자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밀 수출 물량 29%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항에 묶여 있다”며 “약 30%의 물량이 못 나오고 있으니 나머지 국가가 조달하는 70%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곡물 수입 계약부터 도착까지 시간이 수개월 걸리기 때문에 식료품 제조업계는 ‘선물 거래’를 통해 물량을 조달하고 있다. 현재 국내로 들어오는 물량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약 5~6개월 전에 계약한 것이다. A제분업체 관계자는 “지금 계약하면 사태 이전보다 40% 오른 가격의 물량이 반년 뒤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사태가 최대 6개월 이상 장기화하면 가격이 훨씬 더 오른 원맥을 수입하게 되므로 실제 식료품 가격 상승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종합식품회사 B사 관계자는 “제조사로서는 조달 차질 사태를 맞는 게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라며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조달 비용이 오르게 되고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식료품은 조달에 차질을 빚어 대체품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한국은 명태 수입량의 97%를 러시아에서, 해바라기씨유 수입량의 58%를 우크라이나에서 각각 들여온다. 경제 제재와 전쟁 격화에 따른 무역 중단이 광범위하게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해당 품목은 조달할 수 없을 수준에 치달을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은 대응할 여력이 있다는 게 업계 체감이다. 제조사마다 약 3~4개월치 사용 가능한 곡물을 비축 중이며 가격이 떨어질 때 많이 사 놓고 가격이 급격히 뛰면 비축량을 사용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잇단 물가 인상은 물류비 상승 요인이 컸고 당장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경우 전세계 공급망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내 식품 및 유통업계는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B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체감할 정도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려면 여러 공급선이 흔들려야 한다는 얘기인데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는 분명 좋지 않은 시그널인 것은 확실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