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30년 전 주미대한제국 공사관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지난해 문화재청은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유품이자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관련된 외교자료를 기증받아 공개했다.
‘미국서간’(美國書簡)과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이 그것으로 당시 미국 공관원들의 활동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당시 미국과 협상했던 중요 현안 업무와 공사관의 운영을 보여주는 현존 유일의 외교 자료다.
해당 자료들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하면서 고증 사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그동안 이상재 선생의 종손인 이상구(76)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간직해오다 작년 기증했다.
이상재 선생은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돼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 D.C.에 들어갔다가 같은 해 11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다시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서간’에는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했던 편지 38통을 수록하고 있는 편지모음이다. 주된 내용은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 서기관으로 미국에 파견된 기간 동안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등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주미공사관 운영 상황, 미국에 주재하는 동안 활동하거나 견문한 사항 혹은 느낀 점 등을 부분적으로 기록해 둬 당시 공사관의 실상, 그의 활동상과 미국관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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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조미 간 현안사업 중 뉴욕 법관 등이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설치 등 3건을 추진하기 위해 제안한 규칙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돼 있다. 이중 그들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鐵道約章)’ 초안이 함께 수록돼 있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J. R. Morse)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다음해 5월 일본 측에 넘기면서 1899년 9월 일본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해당 자료를 통해 10년 전부터 조선이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이상재 선생의 유품 자료는 19세기 조선왕조의 생생한 대미외교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특히 ‘미국공사왕복수록’, ‘미국서간’은 기존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발굴자료들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이 직접 기록한 귀중한 자료”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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