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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0’에서 ‘프로토콜 경제’라는 생소한 개념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프로토콜 경제는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서 참여자 간 거래 규칙을 합의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분산형 경제’를 뜻한다. 플랫폼 사업자(중개자)가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탈중앙화·탈독점화를 실천할 경제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박 장관이 프로토콜 경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유는 플랫폼 대기업들의 독과점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경제적 영향력은 커졌지만, 여기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이나 배달노동자들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배달의민족과 소상공인 업계가 수수료 산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이나 네이버, 배민 등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을 추진한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프로토콜 경제 개념을 도입한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스라엘의 라주즈(LaZooz)는 자체 애플리케이션과 토큰을 통해 운전자에게 비용을 지급하는데, 중개 수수료가 0%라는 특징이 있다. 미국의 영상 플랫폼 업체 디튜브(Dtube)는 콘텐츠 업로더와 소비자에게 암호화폐를 지급한다. 두 기업 모두 중개 비용 절감과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플랫폼 참여자를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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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는 프로토콜 경제를 올해 주요 경제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세부 정책을 입안 중이다. 우선 블록체인 벤처·스타트업 육성을 비롯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에서 프로토콜 경제 사례를 발굴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과 프로토콜 경제를 중소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부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프로토콜 경제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프로토콜 경제 원천 기술인 블록체인 관련 규제를 풀지 않는 한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논의를 이끈 박 장관이 오는 4월로 예정된 서울시장 선거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면서, 중기부가 관련 정책을 힘있게 이끌어 갈지도 의문이 남는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프로토콜 경제의 보상 체계인 토큰, 즉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철폐 없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규제를 정부에서 풀어줄 용의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