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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마크 저커버그(34)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5000만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그 정보가 선거판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지만, 정작 저커버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저커버그는 야심가다. 본인 입으로 한 번도 인정한 적은 없지만, 저커버그가 언제가 미국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민심을 듣는다며 정치인들처럼 미국 전역을 투어하고 자신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몰래 챙겨왔다. 아내 프리실라 챈과 함께 설립한 공익재단 ‘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지휘한 데이비드 플루프를 채용하기도 했다.
막대한 부에 이어 정치권력까지 넘보던 저커버그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번 의혹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넘겨주면서 사용자의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만약 사용자의 동의 없이 정보를 넘겨준 사실이 드러날 경우 페이스북은 천문학적인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건당 최대 4만달러의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피해자를 5000만명으로 간주하면 총 2조달러, 원화로는 2144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페이스북 사태는 미국 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유럽연합(EU)도 자체적으로 페이스북의 이번 정보유출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 개인정보 문제에 특히 민감한 EU에선 특히 여론이 나쁘다. 베라 요우로바 EU 법무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사건을 두고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 행보를 보이던 저커버그는 심각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본사가 있는 영국의 하원 미디어위원회는 저커버그에게 의회에 출석해 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사건이 중대한 만큼 페이스북의 대표가 직접 설명을 하라는 것이다. 미국 상원에서도 저커버그가 직접 의회에 출석해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커버그가 의회에 죄인처럼 서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게다가 페이스북에서 유출된 정보는 트럼프 대선 캠프로 흘러들어 갔다. 정보를 빼 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트럼프 캠프의 최고책임자였던 스티븐 배넌과 억만장자인 로버트 머서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결국 페이스북이 돈을 받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꼴이 됐다. 그간 쌓아온 젊고 개혁적이라는 저커버그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번 문제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조직적인 문제가 터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 페이스북은 온라인 마케팅회사 ‘랩리프’가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모아 정치 광고업체에 판매한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최초 유출자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추가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안은 마련하지 않았다. 한 헬스케어회사 창업자인 닉 소먼 디센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개발자에게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고 명확히 알리지 않았다”면서 “문제가 터지면, 앞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가 결국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 내부에서도 사업자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 개인정보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저커버그는 “미쳤느냐”며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페이스북이 정보 유출 사실을 발견한 이후에도 즉각적인 대응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저커버그가 이에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페이스북은 저커버그가 의회에 출석할지 여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그가 현재 내부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유출 충격에 페이스북은 휘청거리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 알려진 이후 첫 거래일인 지난 19일 6.77% 폭락한 데 이어 이틀째인 20일에도 2.56% 떨어졌다. 단 이틀만에 50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깊은 고민에 빠진 저커버그의 입에 페이스북의 운명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