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 재무 분석 전문가는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 속에선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시아나를 인수할 경우 부실이 모(母)회사에 전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불행)’ 우려로 정 회장도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회사 정상화 자금으로 얼마를 넣어야 할까?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006800) 컨소시엄은 지난해 11월 2조5000억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사들이기로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2조원, 미래에셋대우가 5000억원을 각각 부담하는 구조다. 이 돈으로 금호산업(002990)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전체를 3228억원에 인수하고, 나머지 2조1772억원은 아시아나의 신주를 사들여 경영 정상화 자금으로 쓰려 했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난해 6월 말 기준 659%였던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회사의 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의 비율)을 경영권 인수 후 300%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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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2兆 추가 투입 불가피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는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당초 계획했던 대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300% 아래로 끌어내리려면 현대산업개발이 경영권 인수 자금 2조원 외에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돈이 최소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3월 말 기준 부채는 13조2041억원, 자본은 2103억원이다. 부채비율은 6279%에 육박한다. 작년 말부터 당장 2조1772억원을 유상증자 대금으로 집어넣어도 부채비율은 553%에 달한다.
현대산업개발이 이 비율을 300%까지 끌어내리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2조139억원을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
현대산업개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단기 금융상품 포함)은 2조2000억원 가량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2조원을 쓰고 나머지 정상화 자금은 외부에서 빌려서 마련해야 한다.
한 신용평가회사 임원은 “현대산업개발은 건설사 중에선 이례적으로 외부 차입금이 거의 없는 회사”라며 “정 회장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건실하게 회사를 키워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귀띔했다. 빚 없이 기업을 일궈온 정 회장 성향상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큰 부채를 짊어지기 부담스러우리라는 이야기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은 현대산업개발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종속회사로 편입하면 두 회사가 사실상 하나의 회사가 되는 만큼 재무제표도 하나로 합쳐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1분기(1~3월) 영업적자는 2920억원으로, 같은 기간 현대산업개발 영업이익(1373억원)의 2배에 달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전 흑자를 내던 회사가 인수 후에는 1500억원 넘는 적자 회사로 바뀌는 셈이다.
이 같은 아시아나항공의 적자는 현대산업개발의 보유 지분율만큼 순이익에도 반영돼 현대산업개발 자본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무 건전성이 같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2분기(4~6월) 화물 운임 상승에 힘입어 반짝 영업흑자(1151억원)를 내긴 했으나 실적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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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한진해운 트라우마’에 아시아나 못 놓아
물론 정부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자금을 보태줄 수도 있다.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부터 아시아나항공에 영구채 인수, 신규 대출 등으로 지원키로 한 금액은 모두 3조3000억원이다. 앞으로 기간 산업 안정 자금도 신규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정부 대출을 아시아나항공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그만큼 아시아나 정상화에 현대산업개발이 써야 할 금액도 줄어들게 된다. 다만 국민 혈세로 특정 기업을 도와준다는 여론의 비판이 부담이다.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도 정부가 2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경영 자율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커서다.
아시아나항공이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신규 주식을 발행해서 경영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다. 한 대학 회계학과 교수는 “개인 투자자 등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주식에 선뜻 투자하려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 회계사는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향후 아시아나의 금융 채무에 지급 보증을 서게 돼 재무 안정성이 같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최종적으로 포기하면 아시아나는 정부 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같은 국적 항공사는 반도체 등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실상의 기간 산업”이라며 “이전 정부가 한진해운을 파산시켰다가 큰 비판을 받은 만큼 현 정부도 아시아나를 살려놓고 끌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