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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일감몰아주기 관행에 ‘칼’을 휘두르기 바빴던 공정위가 이젠 ‘일감 개방’ 방식의 상생 정책으로 규제 방식을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는 5월에 예정된 삼성 웰스토리의 부당한 내부거래 제재 수준이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G 급식 전면 경쟁입찰…CJ도 65% 개방
5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삼성·현대차·LG·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 등 8개 대기업은 5일 서울 마곡동 소재 LG사이언스파크에서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조성욱 공정위원장을 비롯해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 장재훈 현대차 대표, 권영수 LG 부회장,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 강희석 이마트 대표, 김홍기 CJ 대표, 이광우 LS 부회장, 장호진 현대백화점 대표 등 8개 대기업 CEO들이 직접 참석했다.
조 위원장은 “일감 나누기는 제 살을 깎아 남에게 주는 것으로, 아주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번 일감개방 결정은 우리 경제의 큰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감개방으로 이들 8개 대기업이 계열사·친족기업과 거래하던 1조 2000억원 규모의 단체급식 물량을 순차적으로 외부에 개방한다.
특히 LG는 내년부터 전면개방 원칙에 따라 단체급식 일감을 순차적으로 경쟁입찰에 붙이기로 했다. CJ도 그룹 계열사가 CJ프레시웨이가 맡고 있던 구내식당 일감 둘 65%를 외부에 개방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개 식당(수원, 기흥 남자 기숙사)을 시범적으로 개방하기로 해 현재 외부업체를 고르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 일감을 전면 개방할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비조리 간편식 부문에서부터 경쟁입찰을 하고, 현대중공업은 올해 말부터 울산 교육·문화시설 식당을 중소기업에 개방한다. 42개 사업장 급식업체를 신세계푸드가 아닌 다른 곳에 맡긴 신세계는 일감 개방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LS는 계약이 끝나는 사업장부터 경쟁입찰을 도입하고 현대백화점은 김포·송도 아울렛 직원식당부터 지역업체에 개방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계열사를 통한 사내 급식 제공은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한편으로 총수일가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업과 학교 등의 단체급식 시장은 2019년 기준 4조 2799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대기업 계열사나 친족기업인 삼성웰스토리(28.5%), 아워홈(17.9%), 현대그린푸드(14.7%), CJ프레시웨이(10.9%), 신세계푸드(7.0%)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5개 기업은 1990년대부터 계열사나 친족기업과의 수의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하면서 전체 급식시장을 과점했다.
일례로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1997년부터 25년째 삼성전자 기흥공장과의 수의계약을 이어왔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단체급식 수의계약 규모는 4400억원 수준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재벌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단체급식 분야 거래 관행은 유지됐다.
공정위는 2017년 9월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기업집단국 신설 이후 단체급식과 관련한 부당 내부거래 혐의를 조사에 나섰다. 당시 이낙연 총리가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기업 급식 관행에 대해 들여다보라는 지시를 내리면서다. 공정위는 웰스토리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했고 지원 주체인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고발해야 한다는 심사보고서(공소장 격)를 지난 2월에 발송했다. 공정위 칼이 매서워지는 상황에서 다른 대기업들도 계열사 수의계약 관행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을 한 셈이다.
4대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이 편안하게 회사 내에서 식사를 하고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사내급식 수준을 끌어올렸지만, 총수일가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외부 비판이 적지 않았다”면서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외부 기업과 상생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감 개방 선언에 따라 오는 5월로 예정된 삼성그룹의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부당지원 제재 수준도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정위는 조사대상 기업이 법위반 혐의를 자진시정할 경우 과징금을 최대 20% 감경할 수 있다.
권순국 기업집단국 내부거래과장은 “제재 감경 여부는 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