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8년 일한 아파트,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경비노동자의 호소

황병서 기자I 2022.08.04 17:50:52

SK북한산시티아파트, 경비 87명 일자리 잃을 듯
입주자대표회의 2015년부터 인력 감축 시도
9월 말 계약만료 앞두고 ‘경비체계 변경’ 과반 찬성
가구당 월 1~2만원 아껴…경비노동자들 “막아달라”

4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SK북한산시티아파트 소속 경비원 윤모(70)씨가 일 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아파트에서 8년간 일해온 경비노동자 윤모(70)씨는 다음달 말이면 짐을 싸야 할 처지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노동자를 줄여 새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으려 해서다. 윤씨를 포함한 경비노동자 87명이 모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4일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윤씨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등) 한달에 이자만 70~80만원 나가니까 여기 일을 관둬도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며 “저 말고도 (경비원 중) 혼자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 절반 이상은 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윤씨와 동료 경비노동자들은 이곳에서 2교대로 일해왔다. 오전 7시에 출근,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을 지킨 뒤 다음날 하루를 쉬고 다시 출근하는 식이다. 점심·저녁 식사시간 각 1시간 30분,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5시 30분까지 잠을 청할 수 있게 주어진 휴게시간 6시간 30분을 빼면 하루 14시간 30분 근무다. 물론 식사·휴게시간은 임금을 쳐주지 않는다. 이렇게 일해 손에 쥐는 돈은 월 210만원 남짓이다.

경비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저층에서 고층부까지 아파트 내부와 단지 일대 순찰, 각종 쓰레기 정리와 청소다. 윤씨는 “보통은 새벽 6시쯤 출근해 전임자에 인수인계를 받는다”며 “평상시엔 맡은 단지를 청소하는 데에 20~30분 걸리는데 가을과 겨울엔 낙엽 치우고 눈을 쓸어내는 데에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겨울철에 제설 작업하거나 가을철에 낙엽을 쓸고 있으면 몇몇 주민들이 와서 고맙다고 인사해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윤씨는 올해는 이 곳에서 낙엽, 눈을 치울 일이 없어졌다. 이 아파트단지는 앞으로 ‘통합경비체계’를 도입, 경비노동자를 현 87명에서 37명으로 줄이고 미화원(관리원) 17명을 따로 둘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입주자대표회의 정기회의에서 논의된 바다. 대다수가 65세 이상인 현재 경비노동자들과 달리 ‘젊은’ 인력으로 채울 37명은 CCTV 모니터링, 주차 방문객 관리 등을 맡길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파트 주민들이 얻을 수 있는 건 경제적 비용 절감이다. 입대의 측은 이를 통해 기존 경비체계보다 월 경비비를 3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대로면 경비비가 한달 2억3700만원 정도 드는 데 비해 통합경비체계로 바꾸면 1억6600만원으로 줄어든단 것이다. 아파트 평형에 따라 한 가구가 부담해야 할 경비비가 적게는 월 1만4000원에서 많게는 2만4000원 정도 차이난다.

지난달 말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경비체계 변경에 찬성표가 절반 이상 나온 건 이러한 경제적 이유로 보인다. 이 단지에서는 2015년, 2020년, 2021년에도 경비노동자 감원 논의가 이뤄졌고 주민 반대로 무산됐지만, 이번엔 입대의 회의에서 경비업체 변경의 건이 확정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다만 윤씨는 이러한 경비체계가 아파트 관리에 효과적일지 의문이라고 했다. 윤 씨는 “현재는 한 동마다 한 명의 경비원을 두게끔 돼 있는데, 미화원 17명으로 47개 동을 하다가는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봤다.

윤 씨를 비롯한 경비노동자들은 아파트 경비인력 감원을 반대하는 주민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윤 씨는 “오늘 아침에도 한 분이 ‘아저씨 없으면 제설이고 분리수거는 어떡하냐’고 하고,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젊은 주민은 ‘늦게라도 반대 못하느냐’고 말해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경비노동자들은 아파트 단지 내 호소문 붙이기로 하는 등 아직 주민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윤씨는 “수 년 동안 설문조사를 통해 아파트 주민이 (경비인력 감원을) 막아줬다”며 “올해는 주민에게 홍보가 안 돼서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