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이날 내년도 예산을 올해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예산 사업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신규 사업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예산을 배정받을 수 없다.
독일 정부가 이런 극약처방을 내린 건 독일 헌법재판소가 코로나19 대응 예산 600억유로(약 85조원)을 기후변화기금으로 전용한 올해와 내년 예산이 위헌이라고 지난주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일 헌법은 코로나19 대응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정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넘지 않도록 재정준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재정준칙상 예외를 인정받은 예산을 다른 용도로 쓴 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게 독일 헌재 판단이다. 이 같은 헌재 결정으로 독일 정부는 예산 결손 600억유로를 해결해야 할 처지가 됐다.
문제는 기후변화기금이 주로 에너지 요금 보조, 반도체·배터리 산업 지원 등 경제 부양에 쓰였다는 점이다. 이번 예산 동결로 이 같은 경기 부양 예산은 대폭 삭감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최근 독일 경제는 에너지 가격 상승, 수출 부진 등으로 어려움에 놓여 있다. 지난 3분기 독일 경제가 0.1% 역성장한 상황에서 회복을 이끌 마중물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독일 경제계 우려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이날 “기후변화기금은 아무나 생각 없이 추가한 부속물이 아니다”며 “지금 (경제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손실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도 이번 사태 유탄을 맞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했는데 독일 재정에 불똥이 떨어진 상황에서 내년에도 이 같은 지원이 이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독일군 소식통은 내년에 독일이 내년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책정했던 예산이 80억유로(약 11조원)이라며 “이 자금이 집행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중”이라고 FT에 말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독일 정부 일각에선 ‘예산위기’를 선언해 재정준칙을 일시 유예하는 방안까지 계속 거론되고 있다. 다만 연립내각 안에서도 자유시장주의적 성향이 강한 자유민주당은 이 같은 생각에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