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제 다룬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
파격 작품 선보인 극단 신세계, 2년 만의 신작
렉처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 형식 활용
전세사기 문제 파고들며 시스템 비판
금융자본주의 시대 정의에 대한 질문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법이 이렇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서울 성북구에 사는 슈퍼맨이 전세사기를 당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변호사들을 찾아다니는 슈퍼맨.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뿐입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살아온 슈퍼맨은 정작 법이 정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울분을 토합니다.
처음 듣는 슈퍼맨 이야기라고요? 맞습니다. 영화와는 또 다른, 2023년의 한국 사회라는 ‘멀티버스’에 사는 슈퍼맨의 이야기입니다. 극단 신세계가 지난 14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입니다.
◇파격과 충격, 매 작품 궁금증 갖게 만드는 극단
|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한 장면. (사진=극단 신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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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극단 신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극단 신세계는 그동안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연극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누구나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파란나라’, 성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한 ‘공주들’, 장애인 학교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그린 ‘생활풍경’,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별들의 전쟁’ 등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 (지금은 없어진) 남산예술센터에서 처음 본 ‘파란나라’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극장을 가득 메웠던 파란 물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이번엔 어떤 충격을 안길지 궁금하게 만드는 극단입니다. 그러나 한동안 극단 신세계의 작품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극단 신세계의 대표를 맡았던 김수정 연출이 2021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김수정입니다’를 통해 “더 이상 ‘척’ 하는 연극을 하지 않겠다”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극단 신세계는 이후에도 온라인 영상 상영 등으로 활동은 계속 이어왔는데요. 그런 가운데 2년 만에 신작 ‘부동산 오브 슈퍼맨’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한 장면. (사진=극단 신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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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영웅인 ‘척’ 하기를 그만두겠다는 슈퍼맨의 기자회견으로 시작합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한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슈퍼맨은 서울 성북구에 거처를 잡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카페, 식당 등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만의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비록 전세에 ‘한강 뷰’도 아니지만,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집입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슈퍼맨은 2년간의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계약 갱신을 위해 집주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까지도 슈퍼맨은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세사기’의 출발점이라는 것을요. 정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온 슈퍼맨은 전세사기를 겪으면서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부동산 설명서이자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한 장면. (사진=극단 신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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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형식도 독특합니다. 바로 ‘렉처 퍼포먼스’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TV 다큐멘터리 PD가 전세사기를 당한 슈퍼맨을 취재한다는 설정 아래 부동산과 전세의 개념, 한국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 등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 3개를 활용해 다큐멘터리 영상과 연극을 오가는 색다른 시도도 선보입니다. 부동산, 더 나아가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이에게는 친절한 ‘설명서’ 같은 연극입니다.
그렇다고 ‘렉처’만 내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전세사기를 당한 슈퍼맨을 통해 지금 시대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돈이 곧 세상 전부인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의 또한 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현실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법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소송을 하려고 해도 돈이 드는 현실은 이 시대에 정의가 진짜 존재하는 건지 돌아보게 합니다. 비판의 칼날은 시스템으로 향합니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부동산 문제를 지지율을 이유로 방치해 온 정권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는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의 한 장면. (사진=극단 신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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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세계가 2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배경에는 실제 전세사기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김수정 연출은 연출 의도에서 “나도 내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될지 몰랐다”며 “연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들여다 보며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 정의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연극을 하는 우리도, 지금 이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약자와 소수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극이 이 시대에 계속되길 바란다. 배가 고프면 창의성도 없다”고도 했고요.
슈퍼맨은 전세사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그렇게 희망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지는 않습니다.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커튼콜도 없이 공연은 막을 내립니다. 다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이어가는 슈퍼맨의 모습은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보였습니다. 언젠가 재공연을 하게 된다면, 꼭 놓치지 말고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