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억만장자 간 전쟁에 뱅크런 공포…`테라 사태` 또 올라

이정훈 기자I 2022.11.08 11:36:29

알라메다 재무 불투명성 지적, 자매사 FTX 파산설 불똥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 FTT 전량 처분 발언에 일파만파
FTT 가격 하락 및 FTX 뱅크런 일시 주춤에도 불씨 여전
"파산 가능성 0%" 지적에도 코인시장 전반에 악재 우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올 5월에 있었던 스테이블코인 테라-루나의 ‘뱅크런’(은행에서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또 다시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가상자산시장에서 고조되고 있다.

뱅크먼 프리드(왼쪽)와 자오창펑


그 배후에는 가상자산 거래소업계 양대 산맥인 바이낸스와 FTX 거래소, 그 두 회사를 창업해 현재는 억만장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자오창펑과 샘 뱅크먼 프리드라는 두 인물의 전쟁이 있다. 자칫 이 전쟁의 여파가 시장 전체에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다. 그날 코인업계 전문 미디어인 코인데스크는 FTX 자매사인 알라메다 리서치 내부 자료를 취득해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 상당 부분이 FTX가 발행해 거래소 이용자들에게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토큰인 FTT로 채워져 있다”고 보도했다.

FTX와 알라메다 모두 뱅크먼 프리드를 세운 회사로, 이 보도대로 라면 FTX는 FTT 토큰을 발행하고, 이를 알라메다가 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유동성이 낮은 FTT를 대부분 자산으로 가진 알라메다는 재무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근거로 우블록체인 역시 “알라메다가 높은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고 재무제표의 위험성도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알라메다가 정기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아 보고서를 내야만 투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캐롤라인 앨리슨 알라메다 CEO는 “코인데스크가 취득한 재무제표는 알라메다 자산 중 일부만 나와 있는 것이고, 6월30일자로 해당 재무제표에 있는 부채는 상당 부분 갚았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사태를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6일부터 트위터 상에선 FTX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나돌았다. 이 때 미국 NBC에서 가상자산 투자를 자문하는 랜 노이어가 자신의 트위터에 “FTX에서 자금을 빼야 한다. 이건 재정적 조언”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상황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최근 1주일 간 FTT 가격 추이


이후 뱅크먼 프리드가 나서 파산설에 대해 “근거 없는 루머일뿐”이라고 일축했지만, 그 이후 결정적 한 방이 터졌다. 바로 자오창펑 CEO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FTT 전량을 청산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앞서 작년 바이낸스는 2019년부터 FTX에 투자했던 초기 지분을 엑시트했다. 이 과정에서 FTX는 FTT와 바이낸스 스테이블코인 BUSD를 섞어 약 21억달러를 바이낸스 측에 지급한 바 있다.

자오창펑은 최근의 약세장 흐름이나 시장 내 FTT의 제한적인 유동성으로 인해 이를 다 처분하려면 수 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FTT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처분하겠다”고 했지만, 그 자체로 FTT 가격은 추락하고 FTX 거래소에서의 자금 인출은 속도가 붙었다.

나중에 자오창펑은 “경쟁자(FTX)를 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차원일뿐”이라고 했지만, FTX와 뱅크먼 프리드의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지 “뒤에서 로비하는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경쟁자가 미국 의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상 FTX를 겨냥한 바 있다. 뱅크먼 프리드는 미국 재계에서 이번 중간선거에 정치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낸 기업인 10위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FTX에서 자금이 빠져 나가면서 FTX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 양이 1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고, FTX 거래소에서의 시간 당 이더리움 유출량도 사상 최대를 찍었다. 또 바이낸스를 비롯한 거래소들에 FTT를 팔겠다며 이체한 양도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알라메다는 FTX의 핫월렛으로 스테이블코인과 이더리움을 무더기로 송금하고 있다. 뱅크먼 프리드는 “우리는 모든 고객 자산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이 있다”고 했지만, “자금 인출 속도를 느려지고 있지만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FTX 거래소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 규모


그러면서 엘리슨 알라메다 CEO는 자오창펑 쪽에 남은 FTT를 22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고, 뱅크먼 프리드 역시 “코인시장 생태계를 위해 바이낸스와 협업했으면 한다”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지만, 아직 자오창펑 쪽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는 상황이다.

일단 상황이 추가로 악화하진 않는 듯하지만, 여전히 사태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자칫 가상자산시장 전체로 그 불씨가 옮겨 붙는다면, 또 한 번의 테라-루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다.

래리 서믹 더블록리서치 부대표는 “FTX와 알라메다는 오프체인 상에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파산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며 “투자자 인출로 인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순 있어도 바이낸스의 FTT 매각을 장외서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만 케빈 마치 플로팅포인트그룹 창업주는 “바이낸스와 FTX 간의 긴장이 더 광범위한 코인업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아울러 FTX를 둘러싼 FUD(공포·불확실성·의심)가 이틀 후 나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맞물리면 시장에 매물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클 애그블라 글로벌블록 애널리스트 역시 “시장 내에서 FTT 매도 압력이 고조될 경우 FTT에 닥친 위기가 솔라나나 이더리움 등 FTX와 알라메다가 보유한 다른 알트코인 매물로 연결될 수 있다”면서 “이는 자기실현적 위기가 될 수 있으며, 아마 이미 그런 상황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세와 무관하게 규제 칼날이 매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존 리드 스타크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집행 변호사는 “코인 거래소들이 투자자 보호를 보장할 수 있는 규제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이번 일로 자칫 이들 거래소 두 수장에 대해 연방 기관들이 조사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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