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신용사건에 익숙해진 시장은 동양그룹 사태 이후 1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평온함에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는 양상이다. 그간 많은 수의 기업들이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나 워크아웃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제 한동안 쉬어가는 시간이 됐다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시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 좀비 상태에서 환생할 줄 모르고 부유하는 일부 기업들과 시장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상하는 기업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모습은 그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번 설문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AA등급의 적정성에 관한 문항이다. A등급도 모자라서 이제는 AA등급까지도 적정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서글프게 느껴지지만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시장의 현실인 것이다. 정부 주도의 신뢰도 개선방식에 대한 시장의 의견도 흥미롭다. 정부가 나서서 신용평가시스템을 개편하는 방식보다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신뢰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에 더 큰 지지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과 정부의 보완적 역할이 적당히 버무려질 수 있는 소통과 협력의 구조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이번 하반기 신용평가전문가 설문을 실시하면서 SRE가 드디어 20회, 1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십진법의 지배를 받아 왔기에 10년이라는 숫자의 무게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난 10년간 SRE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신평사에 전달하는 중요한 소통의 채널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이제 눈을 돌려 다가올 또 하나의 10년을 바라보자. 신용평가의 무게중심은 아직도 지나치게 발행기관의 눈금자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향후 SRE가 나아갈 방향은 명확해진다. SRE는 기울어진 시장의 눈금자에 달아주는 무게조정 추와도 같다. 현재의 눈금자가 기울어져 있다면 더 큰 조정 추를 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순탄한 과정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될 중요한 과업이다. 시장이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 강산은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약력
2007. 8 ~ 2011. 8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2011. 9 ~ 2012. 7 상명대학교 경영대학 금융경제학과 교수
2012.12 ~ 현재 울산항만공사 재무전문가 자문위원
2013. 2 ~ 현재 금융투자협회 신용평가기관 평가위원회 위원
2013. 2 ~ 현재 한국거래소 채권시장발전위원회 위원
2013. 6 ~ 현재 기획재정부 거시재정자문회의 자문위원
2012. 8 ~ 현재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