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자들의 통한이 서려 있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하면서다. 사도 광산이 일본의 계획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일명 ‘군함도’처럼 과거사 왜곡 현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방위적 외교전에 나서기로 해 2015년 군함도(근대산업시설) 등재를 두고 불거졌던 한일 간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1601년 발굴된 후 1989년까지 운영된 일본 최고 광산이다. 에도 시대엔 도쿠가와 막부의 금고 역할을 했고 1896년 민간인 미쓰비시 합자회사에 매각, 태평양전쟁 땐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1967년 일본의 사적으로 지정된 광산은 1989년 광산 고갈에 따라 채굴이 중단됐고, 현재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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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현이 일본 문화청에 제출한 사도광산 추천서 요약본에는 사도광산을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전통적 수공업에 의한 금 광산 유적군’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전쟁 때 조선 노동자를 강제 동원해 전쟁 물자를 캤다는 기록은 빠져있다. 강제징용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상 기간을 센고쿠(1467~1590년)·에도 시대(1603~1867년)로 국한시키고 일제강점기는 제외한 것이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와 같이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군함도는 1940년대 조선인 강제징용이 대규모로 이뤄진 비극의 현장이다. 일본은 군함도 등재에 따른 국제적 비판 여론을 의식해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했다는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전시 시설에는 “민족 차별도 노동 강요도 없었다”는 증언이 소개돼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유네스코까지 나서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했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15년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강제징용 역사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지난 28일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철회를 일본 측에 공식 요구했다. 같은 날 외교부는 추조 가즈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도 초치해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항의하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경색 국면인 한일 관계는 더욱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등의 문제도 제자리인 상황에서 한일 양국 간 악재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이 등재신청서를 제출하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내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현지실사 후 검토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검토보고서를 토대로 21개국 정부로 대표되는 세계유산위원회가 2023년 6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 아닌 우리나라로서는 이들 위원국들을 설득해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무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