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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건축사는 “역설적으로 소규모 건축물일수록 꼼꼼하게 확인을 한다”며 “반면 3000세대 이상 아파트가 있어도 감리원 배정은 4명만 하면 된다. 현실적으로 감리를 꼼꼼히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4년 ‘세종 모아미래도’ 철근 누락 사태 이후로 ‘주택건설공사 감리자지정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00세대 기준으로 4명의 감리원만 배치하면 평가점수에서 최고점(3.0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리사들은 통상적으로 이보다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4명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감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반면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공사 현장(시공 쌍용건설)에서는 공사인력 3명, 차나칼레 1915 대교(시공 DL이앤씨·SK에코플랜트)에서는 7명당 감리 1명을 뒀다. 업계에서는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인원이라는 평가다. 이 때문에 결국 건설현장의 부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장 인력이 부족하자 미숙련 인력으로 채워졌고 건설 감독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감리 현장의 전문성은 날로 떨어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에 제출한 ‘공사 현장 감리 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LH가 자체 감리하는 주택 공사 현장 166곳 가운데 법에 정한 감리 인력 기준을 총족한 현장은 겨우 24곳(14.5%)에 불과했다. 10곳 중 8곳 이상이 법정 감리 인력 기준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발주처에 종속돼 있는 감리 구조도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슈퍼갑’ 발주처인 LH의 공사가 한두 개가 아니다”며 “현실적으로 어느 누가 ‘공사 중지권’을 사용하겠느냐”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설계 업체의 권한이 매우 강하다. 미국에서는 설계를 담당했던 엔지니어링사가 동일사업의 감리를 한다. 엄격한 감리 때문에 시공사들이 근본적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비용을 제시할 수 없다. 대신 설계에 대한 책임도 크다. 설계 잘못으로 안전사고나 화재가 발생하면 여지없이 엄청난 액수의 소송이 들어온다. 이 때문에 감리의 실질적인 역할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설계와 감리가 나뉘어 있고 감리를 맡을 수 있는 건축사무소의 95%는 10명 미만의 영세업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LH 같은 발주처가 직접 감리 용역까지 발주하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발주처가 감리 업체에 용역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재시공 명령을 하거나, 공사를 중지하는 조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정연 건축사는 “결국 감리비를 발주처가 주는데 ‘을’로서 ‘갑’이 진행하는 공사를 어떻게 중지시킬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