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강세 예의주시"…ECB 라가르드는 무엇을 노렸나(재종합)

김정남 기자I 2020.09.11 06:11:37

ECB "경제 불확실성 커"…제로금리 유지
"통화 완화"…자산매입 프로그램들 지속
유로 초강세 제동 의지…"환율 매우 중요"
1.20달러 돌파 유로·달러 환율, 관리 나설듯
다만 라가르드 발언 후 유로화 재차 강세
미국 의식했나…구두 개입 강도 조절한듯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EPA/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주는 유로화 강세를 유심히 볼 것입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0.00%로 유지하기로 한 뒤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가 상당한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다만 미국을 의식한듯 구체적인 조치까지는 언급하지 않았고, 유로화는 오히려 상승 흐름을 보여 그 배경이 주목된다. 유로화 흐름은 당장 미국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달러화 가치와 직결된다.

◇ECB “금리 현행 혹은 더 낮은 수준 유지”

ECB는 이날 기준금리 동결과 함께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를 각각 현재 -0.50%와 0.25%에서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ECB는 “통화정책 목표치인 물가 상승률 2.00%에 충분히 근접한 수준에 수렴할 때까지 금리를 현행 수준 혹은 더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ECB는 또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한 1조3500억유로(약 1897조원) 규모의 팬데믹 긴급매입 프로그램(PEPP)을 계속 집행하기로 했다. “최소한 내년 6월 말까지 PEPP를 통해 순자산을 사들이고 코로나19 위기가 끝났다고 판단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기조 역시 재확인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월 200억유로의 순자산매입프로그램(APP)을 예정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ECB가 유로존 경제 전망을 다소 상향 조정했음에도 초완화적인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ECB는 올해 인플레이션을 0.3%로 봤으며, 내년과 내후년의 경우 각각 1.0%, 1.3%로 예상했다. 내년 전망치는 지난 6월 당시 수치보다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통화정책 목표치에는 못 미친다.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석 달 전 -8.7% 전망에서 이날 -8.0%로 상향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경제 지표는 반등을 암시하고 있고 이는 기존 전망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회복의 힘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경기 리스크는 하방 쪽”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제 회복은 향후 팬데믹의 방향과 통제 정책의 성공에 의존하고 있다”고도 했다.

◇“유로·달러 환율 주시”…ECB, 또 개입

라가르드 총재는 특히 최근 유로·달러 환율이 1.20달러를 넘어선 것(유로화 강세·달러화 약세)을 염두에 둔 듯 환율을 주시하겠다는 언급을 수차례 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특정 환율 레벨을 거론하는 식으로 구두 개입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1일 런던외환시장에서 유로·달러 환율은 장중 1.2011달러까지 폭등했다. 장중 1.20달러는 2018년 5월 초 이후 볼 수 없었던 레벨이다. 그만큼 1.20달러선은 유로화 강세의 심리적인 기준점 역할을 했는데,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 등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유로화 가치가 치솟은 것이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오르는 건 길게 보면 나쁠 게 없지만, 가뜩이나 낮은 물가로 신음하는 와중에 인플레이션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전반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유로·달러 환율이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환율에 있어 목표치가 있지는 않지만 유로화는 (통화정책을 할 때)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는 얼마 전 “유로·달러 환율은 매우 중요하다”는 필립 레인 ECB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구두 개입과 맥을 같이 하는 발언이다.

ECB는 이날 공식 성명에는 특정 환율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AIT 같은 전례 없는 조치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연준과 발을 맞추며 환율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ECB, 유로 강세 큰 걱정은 안 하는듯”

시장은 라가르드 총재 발언 이후 예상 밖 더 강세를 보였다. 유로·달러 환율은 유로화 예의주시 발언 직전 1.183달러 안팎에서 거래되다가 직후 1.19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 다시 안정세에 접어들며 1.87달러대로 내려왔다.

블룸버그는 “ECB가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유로화를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면서도 “통화정책을 조정해야 하는 필요성까지는 피력하지 않았다”고 했다. 환율은 상대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국을 의식해 발언 수위를 조정하려 ‘줄타기’를 했다는 해석이다. 유로화 약세는 달러화 강세를 부를 수 있고, 이는 대선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화 약세를 등에 업은 증시 초강세를 대표적인 경제 치적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언급을 했다”면서도 “ECB가 ‘강한 유로’를 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그 정도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시장의 예상보다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 강도가 약했는데, 이는 의도된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추후 유로·달러 환율은 심리적인 지지선인 1.20달러선을 넘지 않은 가운데 현재 수준에서 횡보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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