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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바위인 듯도 하고 섬인 듯도 하다. 눈앞에 앉은 탄탄한 저 단지가 말이다. 질퍽하지만 단아하고, 수더분하지만 정교하다. 파내듯 심은 몸통의 문양이 시선을 뺏고, 매끈한 듯 거친 입구의 마감이 마음을 뺏는다. 화룡점정은 손잡이에 감은 노끈. 사람을 배려한 건가, 항아리를 배려한 건가.
전통방식에 현대감성을 얹은 이 세련된 미감은 원로도예가 김용윤(70)의 장인정신에서 나왔다. 작가는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을 요즘 감각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든든하고 넉넉한 양감은 작가의 힘. 무게중심을 바닥에 내린 조형성이 편안하고 정겹다. 땅에서 태어난 흙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고 할까. 그렇다고 그 흙이 어디 가겠는가. 움직이진 않지만 늘 꿈틀대는 그 또한 흙의 속성이니. 작가는 그 묘한 이중성을 도기에 고스란히 옮겨놨다. 터질 듯한 기운을 애써 감춘 형국이다.
작품명 ‘구선동설화Ⅰ’ (2020)는 말 그대로 구선동에 전해오는 설화란 뜻일 터. 작가가 자주 쓰는 테마이기도 한 그 긴 이야기는 단지의 표면에 새겼단다.
9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딸 김민영 작가와 여는 2인 도예전 ‘이음: 전통을 잇고 세대를 잇는’에서 볼 수 있다. 분청토·화장토 재유. 27.5×27.5×24㎝. 작가 소장. 장은선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