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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과속 걱정인데…여론 눈치만 보는 은행들

전선형 기자I 2020.05.18 06:00:00

4월 은행대출 32조 급증...대출 수요 더 늘 듯
저신용 中企·자영업자 비중 커 위험관리 고민
리스크 관리해야지만 당국·여론 압박에 주저

[이데일리 전선형 기자] 은행권이 위험이 큰 자영업자와 저신용 가계대출 과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이런 대출이 급속히 불어 속도 조절이 필요해도 금융당국과 여론 눈치가 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서다. 지금처럼 손 놓고 있다가 대규모 부실대출 사태로 확산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4월 대출 순증 3월 이어 역대 최고치 경신

17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시중은행의 총대출 잔액(한국주택금융공사 정책 모기지론, 신탁계정 포함)은 1844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달 전과 비교해 32조7000억원(1.8%), 작년 말과 견줘 5% 증가했다. 역대 최고 증가 폭이다. 기업대출 잔액은 929조2000억원으로 한달새 9조2000억원(3.1%) 늘었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대출이 11조2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은 16조6000억원 확대되며 각각 한달전과 비교해 12.8%, 9.5% 급증했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증가분 중 65% 정도가 자영업자대출로 나타났다. 정부가 은행을 통해 소상공인 대상 정책금융을 지원했고 은행도 관련 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가계대출도 증가했다. 4월 가계대출 잔액은 915조7000억원으로 전달대비 4조8000억원 늘었다. 9%대의 증가율이다.

은행의 대출 과속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은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대출을 통해서라도 일단 현금을 확보해두려 하고, 소득이 줄어든 가계 역시 대출 의존도가 커질 것으로 보여서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조사)’에 따르면 2분기 은행들의 대출수요지수 전망은 24로 전분기 대비(5) 늘었다. 대출 수요지수는 0을 기준으로 -100~100 사이에서 분포하며 지수가 높을수록 대출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기업대출이 크게 늘었는데, 대기업의 경우 1분기 -7에서 2분기 10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으며, 중소기업도 33에서 40으로 높아졌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체와 자영업자의 운전자금 수요가 높게 유지되고 정책자금 지원 또한 지속 병행될 것”이라며 “2분기에도 은행권 대출은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2분기 신용위험지수 예상치 높아져...대출 기준 강화 ‘만지작’

은행 입장에서 당장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새 대출 수요가 위험이 큰 중소기업과 중·저신용자 위주로 몰린다는 것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경기가 더 고꾸라지면 이런 대출부터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서는 대출이 늘어도 남는 게 없다. 실제 은행들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1분기 기준 1.46%에 불과하다. 1년 전 1.62%에서 0.2%포인트 가량 하락한 역대 최저치다. 이런 상황에서 연체율마저 조금씩 오르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2월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43%로 전월말(0.41%) 대비 0.02%포인트 상승했다. 1년 전보다 0.07%포인트 늘어났다.

2분기에는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은행 대출의 신용위험 지수 2분기 전망은 38로 최근 3년 내 최고치다. 특히 중소기업이 1분기 17에서 2분기 50으로, 가계가 7에서 27로 급상승할 전망이다. 신용위험지수가 높을수록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발 빠른 일부 은행은 이미 리스크 관리모드에 돌입했다. 수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대출 문턱을 높이는 식이다. 외국계인 씨티은행의 경우 지난달 한시적으로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 기준을 기존 A~D등급에서 A~B등급까지로 변경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6일부터 고신용 개인고객과 우량기업 직원 대상 신용대출 상품인 ‘엘리트론Tops직장인신용대출’ 한도율을 절반가량 줄였다. 하지만, 대부분 시중은행은 고민만 할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여론의 압박이 커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아서다. 금융당국은 최근 예대율 등 각종 대출규제를 풀며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운 실물경제에 유동성을 넉넉히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여론도 이자 부담이 싼 은행이 대출을 확대해 서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전세대출이 급격하게 늘자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비아파트 전세대출을 줄이려던 신한은행도 계획을 취소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증가 속도가 가팔라 은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은행들이 대출에 대한 신용등급 강화 등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요즘 분위기를 봐서는 섣불리 진행하지는 못해 고민이 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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