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끔 그에게 “당신과 잘 통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편애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김 2차장을 신임했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만큼 적도 많았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FTA 정책을 마음대로 한다’는 비난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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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2차장은 관가를 떠난 뒤에도 화력한 이력을 쌓았다. 유엔대사, 변호사, 교수, 대사, 대기업 사장, 국제기구의 간부를 두루 거쳤다. 2009년 인재가 넘쳐나는 삼성전자에서 해외법무담당 사장직을 맡았을 때도 ‘파격’ 인사라고 떠들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를 불러들였다. 고사했지만 헛 일이였다.
결국 통상교섭본부장을 재수((再修)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글로벌 통상전쟁이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종 말고는 재협상을 해결할 사람이 없다고 봤다. 옳은 선택이었다. 10년전 FTA 체결을 주도한 그는 미국의 압박 속에 한미FTA 개정작업도 조기에 마무리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번 떠나면 다시 복귀가 힘든 게 한국 공직 사회다. 10년전에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던 그는 돌고 돌아 다시 ‘어또공’(어쩌다 보니 또 공무원)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까지 그를 중용한 이유는 하나다. ‘그래 너 잘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경력과 성과다. 그는 미국 인사와 접촉할 때 대화를 이끌기 위해 현지 프로 미식축구팀들의 최근 전력을 섭렵하고 떠날 정도다.
그가 보유한 해외 통상 네트워크는 화려하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기 위해 전세계 로비스트들이 워싱턴으로 몰려들지만 그는 항상 맨 앞줄이다.
트럼프 대통령마저도 방한 당시 그와 악수하며 “FTA guy(FTA 전문가)”라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비지니스 친화력과 달리 성격은 ‘지랄 맞다’ 싶을 정도다. 직원들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어로 호되게 꾸짖는다. 기자간담회 중간에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박차고 나간 적도 있다.
퇴임사에서 직원들에게 “욕먹으면서 영어배우고 싶으면 청와대로 찾아오라”고 해 화제가 됐다. 다만 그 ‘지랄 맞은’ 성격이 물러서서는 안되는 통상협상에선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통상전문가에서 외교 전문가로 거듭날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그를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기용한 것은 또다른 ‘파격’ 이다. 넘쳐나는 외교통일 분야 전문가들을 제치고 통상전문가를 외교·통일 분야 핵심 참모로 임명한 것이다. 게다가 통상본부장은 장관급 예우를 받지만 2차장은 차관급이다. 공직사회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일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행 과정에서 한미간 의견 조율과 교섭을 김 차장에게 맡기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비핵화 협상 등 안보 분야 경험이 전무한 김 2차장이 북미 간 중재 외교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김 2차장이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에 UN대사를 역임하며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도와 정무 감각을 쌓은 만큼 무난히 임무를 수행할 것이란 기대가 더 크다. 특히 외교통상 분야에서 쌓은 다양한 현장 경험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는 그의 최대 자산이다.
기존 안보실 1차장 산하에 있던 비핵화 업무 기능을 2차장 산하로 이관하면서 평화기획비서관실 직제를 신설한 것 역시 김현종 차장의 청와대 입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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