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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장환경 속에서 갑작스럽게 던져진 대형폭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분노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설문 참여자들은 레고랜드 PF ABCP에 대한 강원도의 채무보증 불이행이 시장을 유의적으로 위축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서리가 내린 회사채시장에 눈보라를 불러와 버린 이번 사태는 본격적인 유동성 경색의 중요한 트리거가 되었다. CP 등급 중 가장 높은 A1 등급에서 예상치 못한 디폴트가 발생했기에 시장의 혼란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만, 시장의 속설처럼 안 좋은 사고는 꼭 시장이 안 좋을 때 발생하는 법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과거에 비해 좀 더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평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관찰된다. 신용평가사의 시각변화는 종종 시장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를 기민하게 파악해 내는 목소리에 대해서 시장은 합리적인 평가를 내린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경고음을 내고 투자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짚어주는 신용평가사의 노력에 시장은 박수를 보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회사채시장의 혹한기가 시작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혹한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춥고 길게 이어질지도 모른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과거의 경험으로 유추해볼 때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의 결말은 주로 격렬한 파열음을 내는 경착륙이었다. 2023년을 향한 전망을 내어 놓아야 하는 시기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천지에 휘몰아치는 눈 폭풍으로 어디가 제대로 된 길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 신용평가사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눈에 덮여 숨겨진 크레바스에 빠질까 두려워 투자자들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때 자그마한 형광색 깃발을 차례로 꽂으며 그래도 시장은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위기의 순간에 신용평가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겨울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시장이 북풍 한파를 버텨낼 수 있는 온기를 지킬 수 있게 신용평가사들이 자그마한 텐트와 침낭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