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2019년 새해가 밝았지만 금융시장은 밝지 못하다. 신년 증시 개장 이틀만에 코스피 지수는 2000이 붕괴하여 25개월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출위주의 경제인 이상 한국은 수출과 대외 경제 여건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어제 발표된 중국 제조업 지표는 한국의 가장 큰 수출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었으며, 중국 경기의 둔화는 곧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로 연결되기에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1월부터 시작되는 2018년 4분기 실적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평가하였고, 이것이 지수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보통 일반적으로 학부 재무관리 교과서에서 주식시장은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증권이기에 이를 거래하는 행위는 곧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행위이며, 이 맥락에서 주식시장은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설명이 성립한다. 이러한 기업 소유권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주식시장을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은 1993년 전미경제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기업 통제권 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이라 설명한 바 있다. 즉 주식시장은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시장이기에 기업의 실적 혹은 경영자의 능력이 평가되며, 그렇기에 이들이 투자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적대적 인수합병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본이 효율적으로 분배되어 경제 전체가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식시장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는 주식시장에 대해 이와 다른 의견을 견지한다. 숄즈는 주식시장을 포함하는 금융시장의 본질을 “위험(Risk)을 거래하는 행위”로, 즉 금융시장이란 곧 위험(Risk)을 거래하는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주식시장을 생각해보자. 상술한 것처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이 의미하는 것은 “기업의 소유권”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숄즈는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자신이 기업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거래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상술한 젠슨이 언급한 기업 통제권 시장으로서 주식시장에서 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사람 혹은 방어하는 사람 정도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숄즈는 주식이 대표적인 “위험으로서의 금융상품”이라고 말한다. “High Risk, High Return”은 이미 주식시장에서 진리와 마찬가지이거니와, 주식은 자본 수익 혹은 배당을 대가로 위험을 보유하는 증서라는 것이 숄즈의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가 주식시장에서 어떤 주식을 매수하여 보유하는 것은 배당 혹은 자본 수익을 얻기 위해 그 기업의 위험을 감당하는 것이고,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배당을 받았건, 자본 수익을 얻었건, 아니면 손해를 보았건 상관없이 더 이상의 위험을 감당하지 않기 위한 행동임을 상기해본다면 숄즈의 이런 지적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위험을 거래하는 시장으로서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하락한다는 의미는 곧 위험을 감당하려는 사람이 없음을, 다시 말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식을 보유하는 행위가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일이 순간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년 가을부터 한국 경제에서는 이러한 주식시장에서 지수의 급격한 하락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이러한 반복되는 하락은 비록 기업의 펀더멘털이 건전해도 시장 참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되고 있으며, 미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하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경제 여건 역시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의 문제는 한국 경제 내부의 문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장 불안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금이나 달러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를 하는 성향이 나타난다. 즉 금 가격과 달러 환율은 상승한다. 실제로 국제 금 시세는 약간의 변동은 있을지언정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러 혹은 금을 대체하는 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라 기대를 모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은 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 참여한 많은 투자자들은 이러한 모습에 한때 자신들이 품었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 암호화폐의 가능성이 있다. 학부 재무관리 교과서에서 배우는 포트폴리오 이론과 이에 기초한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개별 자산이 시장의 일반적인 경향성과 얼마나 같은 방향 혹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이나 국제 금 시장 혹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과 독립된 하나의 자산시장으로서 암호화폐 시장이 움직인다면, 이건 투자자 입장에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여 위험을 낮추는 수단이 하나 더 추가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이는 경제 전체적으로 좋은 일이다.
비록 금융중개기관이 개입되지 않은 시장 참여자 사이 직접적인 금융거래라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상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 생활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인터넷 역시 최초 등장 목적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목적과 다르다. 그러므로 암호화폐가 금융시장에서 기능하는 하나의 자산이 되고 이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역시 전체적인 금융시장 입장에서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현재 글로벌 경제가 어려워지고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위험을 헤지하는 대체투자자산으로서 암호화폐의 중요성이 증가할 수 있으며, 이것이 암호화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