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25)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스포츠 뉴스의 악성 댓글에 대한 문제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생전 고유민 선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팬도 아니신 분들이 어쭙잖은 충고 같은 글 보내지 말라”며 악성 댓글에 대한 고충을 드러냈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들의 스포츠 뉴스에는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있다. 악성 댓글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면서 댓글 서비스를 중단한 연예 뉴스와는 다른 양태다. 하지만 스포츠 뉴스의 악성 댓글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인신공격 등으로 도배된 스포츠 뉴스 댓글은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다.
18년차 야구팬이라는 최수호(남·28세)씨는 “경기 후 욕설로 아수라장이 되는 스포츠 뉴스 댓글창은 팬들 사이에서도 문제”라며 “평소 생활하면서 억눌렸던 분노를 특정 선수나 팀에 대입해 푸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눈쌀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 스포츠뉴스도 연예 뉴스처럼 댓글에 대한 자정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예 뉴스 못지 않게 욕설·폭언 난무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지난해 10월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악성 댓글을 남기는 일명 ‘악플러’들은 주로 인터넷 기사(47%)와 SNS(22%)에 악성 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악플 대상은 주로 연예인과 방송인(31.0%)이었으며, 정치인(29%), 스포츠선수(14.0%)가 뒤를 이었다. 연예인 못지 않게 스포츠 선수들도 뉴스의 악성 댓글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다.
여자 농구 박지수 선수(22)는 지난 1월 자신의 SNS에 “우울증 초기까지 갔다"며 "농구를 포기하고 싶은 정도”라면서 악플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은 유명인이 사회적 부와 명예를 얻은 만큼 대중의 욕설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분노를 거리낌 없이 해소해도 정당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피해자는 굉장히 공포스럽다"며 "위험 상황을 피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악성 댓글은 인터넷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말을 덧붙였다.
팬들이 오해할까 고소 결심 쉽지 않아 ... 해도 '솜방망이' 처벌
현실에서 스포츠 선수의 고소 결심은 결코 쉽지 않다. 대다수의 선수들은 악성 댓글을 참고 견딘다. 악성 댓글에 대한 고소 조치가 자칫 '팬'에 대한 공격을 해석될 우려가 있어서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오지환 선수의 아내 김영은 전 아나운서의 경우 남편이 “그들 또한 야구팬이니 관심으로 생각하자”며 악성 댓글 고소를 만류했다고 밝혔다.
경기장에서 팬들과 직접 마주하며, 경기 결과에 대해 매 순간 평가받는 선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비난도 비판으로 받아드려야 할 때가 많다는 것.
4년차 야구팬인 강고영(여·23세)씨는 "경기가 끝난 후 비판을 가장한 인식공격성 댓글이 난무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리가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랜 고민 끝에 고소를 결심해도 강도 높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밝은빛 법률사무소 조세희 변호사는 "(악성 댓글을) 고소해도 벌금형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며 "대부분 전과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악성 댓글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거나 악성 댓글을 단 횟수가 상당한 경우에만 집행유예나 실형을 선고 받는다"고 설명했다.
체육계 "스포츠 뉴스 댓글 중지해야"
체육계는 스포츠 뉴스의 댓글 기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는 "연예 뉴스의 댓글 기능은 폐지했지만 스포츠 뉴스의 댓글은 그대로 유지해 악성 댓글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의 변화를 촉구했다. KOVO는 지난 3일 스포츠뉴스 댓글 기능 개선을 공식 요청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역시 지난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과거에는 비판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선수들이 단순 충고를 넘어선 '악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스포츠 뉴스의 댓글 금지법을 발의해달라"고 말했다.
현재 방식으로는 악플을 막을 수 없는 만큼 댓글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포털 사이트 관계자 "개선 방안 검토하는 중"
포털사이트는 스포츠뉴스의 악성 댓글 차단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모든 댓글 정책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카카오 관계자도 "현재로선 폐지 계획은 없으나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다"며 "그동안 이용자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댓글 정책을 강화, 운영해왔으며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뉴스의 댓글 폐지와 함께 인터넷 사용자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상 댓글 문제가 심각하다"며 "플랫폼과 시스템 개선 이전에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를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박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