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역대급 불황에도 최고급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국내에서 사상 최대 실적 잔치를 벌였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르메스코리아는 작년 매출 6502억원(전년 대비 23.3%↑), 루이비통코리아는 1조6922억원(15.3%↑), 샤넬코리아는 1조5913억원(30.0%↑)을 기록했다. 3사의 매출을 합하면 3조9337억원으로 4조원에 육박한다.
이 기간 3사의 영업이익률 평균은 무려 28%에 달한다. 에르메스코리아는 무려 32.4%였으며, 루이비통코리아는 24.6%, 샤넬코리아는 26.5%였다. 작년 국내 20대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한자릿수대였다. ‘에·루·샤’ 외에도 디올, 프라다, 티파니, 롤렉스 등 상위 명품 브랜드의 실적이 모두 역대 최고를 찍었다.
하지만 명품 업체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눈치를 보지 않는’ 가격 인상을 거듭한 덕이기도 하다. 지난해 ‘에·루·샤’ 브랜드는 각각 수차례씩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인상률이 2~3% 가량이지만 워낙 고가다 보니 인상액은 막대하다. 작년 10월 기준 루이비통의 ‘카퓌신 MM’ 가격은 955만원에서 984만원, ‘카퓌신 BB’는 889만원에서 916만원가량 올렸다. 한 번에 수십만원씩 오르는 셈이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던 작년에는 ‘공교롭게도’ 환율이 뛸 때마다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해외에서 국내에 수입해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환율과 가격이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환율이 내렸다고 가격을 내린 적은 없으니, 환율을 빌미로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국내 기업에 가격 인상 자제를 권고하고 있지만 명품 업계는 사실상 ‘무풍지대’이다. 올려도 살 사람은 있으니 올린다는 ‘배짱 영업’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우리는 제품당 50원, 100원씩 가격을 올리려고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한 번에 수십만원씩 올리는 명품 업체들을 보면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명품은 이제 더이상 특정 계층만 구매하는 ‘사치품’이 아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도 명품을 착용·소지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백화점은 청소년 명품 고객을 위한 팝업 스토어도 내놓고 있다. 소비는 개인 자유이며, 가격을 올릴지 내릴지도 기업의 자유이다. 그러나 IMF 이후 최악의 불황 시대에 실적 잔치를 벌이는 명품 업체들의 행보를 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을 존중하는 것 같은 액션 뒤에는 혹시 비소(誹笑)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