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게이츠와 영국의 고급차 브랜드인 롤스로이스가 함께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어디일까요.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운 이 문제의 답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원전입니다. 물론 현재 가동 중인 일반적인 원전은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에너지를 책임질 ‘소형모듈원전(SMR)’이 그 답입니다. SMR은 석유와 석탄 등 기존 화석 연료를 대신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면서,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그야말로 미래기술의 집합체로 불립니다.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은 말 그대로 대형 원전 대비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인 원전으로,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 안에 배치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전에는 발전용량이 100~300MW(메가와트)인 원전을 SMR로 분류했는데, 지금은 500MW 이하 원전을 SMR로 통칭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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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은 대형 원전의 가장 큰 불안요소이자 단점인 안전성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손꼽힙니다. SMR 개발사들은 사실상 ‘완벽한 안전성’을 추구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이는 SMR이 증기 발생기와 가압기, 노심과 핵연료 등을 하나의 용기 안에 넣어 배관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대형 원전의 가장 큰 위험이 배관 파손에 따른 방사능 유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관이 없는 SMR은 이론적으로 이 같은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입니다.
이와 함께 전원 공급이 중단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SMR은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SMR은 발열량이 적어 중력이나 밀도차 등을 통해 원자로를 자연적으로 냉각할 수 있어서입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불러일으켰던 전원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해도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SMR의 안전성을 얘기할 때 ‘피동형(Passive)’ 안전 개념을 채택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피동형 안전개념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외부 전원이나 별도 조작 없이도 원전 스스로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SMR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화한 설계, 적은 발전 용량 덕분에 대형 원전에 비해 설치할 수 있는 부지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입니다. 대형 원전은 발전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해안에 지어야 하지만, SMR은 발전용수가 적게 들어 꼭 해안에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륙에도 충분히 건설이 가능합니다.
퍼즐이나 레고 블록처럼 모듈화해 공장에서 만든다는 점은 빠르게 어디에나 대규모 발전 시설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듈화한 SMR을 공장에서 만들어 원전이 자리 잡을 부지에 일괄 설치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듈의 수를 조절해 내륙 지역에서 대규모 발전 시설을 구축할 수도 있고,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는 곧 비용과도 연결됩니다. 공사 기간을 줄이는 것은 곧 비용을 줄이는 것이고, 같은 모듈을 공장에서 연속해 만들면 원가 절감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SMR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일정하지 않은 발전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손꼽힙니다.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백업 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최근 새로운 탈탄소 에너지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수소 생산에도 SMR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수소 에너지 생산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손꼽히는 기술이 ‘수전해’인데, 이때 필요한 것이 일정한 고온의 열입니다. SMR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이용하면 미래 핵심 에너지인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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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가 가속화하며 세계 각국은 앞다퉈 SMR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일본 등 국가가 뛰어들어 전 세계에서 개발되는 SMR의 종류가 7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한 SMR을 새로 도입하겠다며 프로젝트에 착수한 국가만 30개국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SMR 시장의 무서운 성장세도 예상되고 있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SMR 관련 시장이 2030년에는 30~180기에서 2050년에는 400~1000기 규모로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고,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이 17개, 러시아가 17기의 SMR을 개발하고 있고, 중국 8기, 일본 7기 순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SMR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SMR은 원자로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미국의 뉴스케일은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수로형’ SMR을 개발하고 있고 빌게이츠가 만든 테라파워는 소듐을 사용하는 ‘소듐 냉각로SFR’을, 미국의 X-에너지는 헬륨을 사용하는 ‘고온가스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SMR 시장 선점, 기술 확보를 위한 각국의 투자와 지원도 이어지고 있는데, 바이든 정부는 2035년까지 발전부문 탄소중립 추진 등을 위해 SMR 기술개발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에너지국은 지난해부터 SMR 실증사업을 통해 10개의 SMR 개발에 38억5000만 달러(5조3692억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국 역시 2035년 탄소중립을 위해 SMR 개발을 위한 ‘미래 원전 기금’을 신설하고 1억2000만 파운드(1930억원5100만원) 투자에 나섰습니다. 영국은 원자력규제청이 로스로이스의 SMR에 대한 일반설계평가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SMR 시장에서 요구하는 안전성·경제성·유연성을 갖춘 혁신형 SMR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2028년까지 표준설계와 기술 검증을 완료하는 연구 개발 사업인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며 2028년까지 총 3992억원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안전성 높여도 논란 남아…사용후핵연료부터 원전기피 여론까지
SMR이 대형 원전의 여러 단점을 해결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논란거리를 안고 있어 일부에서는 SMR 상용화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상용화 전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SMR의 가장 큰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원전 연료가 타고 남은 재)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입니다. 발전용량이 작고 모듈화돼 있다고 해서 방사성폐기물이 대형 원전보다 적거나 없다는 아니기 때문이죠.
현재로서는 땅속 깊은 곳에 방사성폐기물을 묻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손꼽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보관할 수 있는 처분장이 없어 원자력발전소 내 임시 저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임시 저장시설도 포화상태라 새롭게 원전을 가동할 경우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대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SMR의 경우 소규모로 건설되기 때문에 임시 저장시설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SMR이 모듈화돼 있어 공사기간을 단축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긴 하지만, 사실 이를 발전량과 비교해보면 대형 원전보다 저렴하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형 원전만큼의 발전량을 확보하려면 그만큼 많은 수의 SMR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때 드는 비용이 대형 원전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너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1000MW의 출력을 내는 대형 원전의 건설 비용은 3조~4조원이고, 100MW의 SMR의 건설비용은 약 1조원으로 추산됩니다. 대형 원전 수준의 출력을 내기 위해서는 10대의 SMR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계산으로는 10조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는 거죠.
또한 안전성을 높였다고 해도 여전히 원전이라는 점은 여전히 약점입니다. 원전 기피 여론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안전성에 대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점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