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일하는 청소년, 어른에게 묻다 "어떻게 해요?"

장병호 기자I 2019.12.05 00:35:00

국립극단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소설가 박완서 작품 각색 청소년극
10대 아르바이트 청소년 현실 담아
어두운 이야기, 대중가요로 생기 더해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오늘 밤 끝장 보자 다 끝장 봐 오늘 밤 끝장 보자 빵야 빵야 빵야.”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의 한 장면. 거사(?)를 치르기 위해 모인 청소년들이 긴장을 풀려고 그룹 빅뱅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무대 위에서 방방 뛰는 배우들의 춤이 깜빡이는 사이키 조명 속에서 명멸하는 이미지로 강렬함을 전한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가득한 가운데 한 아이의 외침이 흥을 깬다. “야, 이거 뽕쟁이 노래잖아!”

흔히 청소년기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한다.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은 그런 10대들의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무대에 올린다. 청소년의 현실을 가감 없이 연극으로 담아온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2019년 마지막 작품이다. 극단 그린피그를 이끌고 있는 연출가 윤한솔의 첫 청소년극이다.

원작은 소설가 박완서가 1979년 발표한 단편 ‘자전거 도둑’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 수남이 자전거 도둑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물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이다. 작가 김연주가 각색을 맡아 원작을 2019년을 배경으로 ‘일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로 재창작했다. 창작진 및 배우들은 지난 9월부터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을 통해 설문조사, 대본 낭독 및 토론, 리허설 공개, 학교 방문 등을 진행하며 실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주인공 수남은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으로 바뀌었다. 친구의 명품 옷을 빌려 입었다 학교에 압수당하자 옷값을 벌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도둑질을 했다 소년원에 간 수남의 형의 이야기가 극을 이끈다. 원작에 없던 10대 먹방 유튜버 빈쯔를 등장시켜 청소년들의 생생한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출연 배우는 총 7명. 이 중 주인공 수남(이주형 분)과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 ‘헬멧’(김원태 분) 역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공연 내내 옷을 덧입으며 학생, 교사, 치킨집 주인, 수남의 형과 어머니 등 여러 역할로 변신한다. 소극장 무대는 육상 트랙을 형상화했고 그 가운데에 오토바이와 컴퓨터 등을 배치했다. 공연 내내 배우들은 트랙 위를 달린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현실이다.

시대도 설정도 달라졌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무책임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오토바이 배달 도중 사고를 낸 수남은 합의금 문제로 고민에 빠진 나머지 치킨집 주인 아저씨에게 SOS를 보낸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힘들어”라는 외침이다. 수남의 형은 소년원에서 “베이킹과 컴퓨터도 배우고 합창까지 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말만을 듣는다.

종잡을 수 없는 10대의 모습처럼 공연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연 중반에는 수남이 갑자기 극장 조명을 직접 켜고 관객들을 찾아가 말을 건다. “어떻게 해요?” 관객에게 던지는 갑작스러운 질문은 청소년에게 무책임한 한국 사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빅뱅, 디제이 디오씨, 소녀시대 등 친숙한 대중가요가 삽입돼 생기를 더한다. 그러나 원작과 다른 결말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공연 말미에는 옴브레 음악감독이 이번 연극을 위해 따로 작곡하고 윤한솔 연출가 같이 작사한 노래 ‘엄마 없는 아이’가 흘러나온다. 쓸쓸한 멜로디에 담긴 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밧줄로 나를 천국으로 올려주세요.” 공연은 15일까지.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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