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오사카 시민들은 왜 '위안부 옹호'한 극우정당에 환호했나[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I 2021.11.08 07:35:00

日중의원 선거에서 극우정당 일본유신회 약진
지역감정 심한 도쿄에선 "오사카人 바보라서"
무상교육·무상급식 등 젊은층 열광하는 정책
코로나19 대응도 77%는 "유신회 높게 평가"

오사카 도톤보리의 명물 글리코맨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오사카 사람들은 바보.” “유신회의 악행들을 알면서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 것인가?”

일본의 극우 성향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오사카에서 집권 자민당을 제치고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 유권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원래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정당이던 일본유신회는 오사카 지역에 후보자를 낸 15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했고, 전국적으로는 41석을 얻어 직전(11석)보다 네 배 가까이 의석을 늘렸다. 이는 중의원에서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필요한 정족수인 21석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다. 단독 법안 발의도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달 19일 오사카에서 총선 후보들의 연설을 듣는 시민들의 모습(사진=AFP)
여타 야당이 뼈아픈 패배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이은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경제,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의혹 등 자민당을 향한 불만이 날로 거세지던 차에 야당들은 “이번에는 진짜로 정권을 교체하자”며 똘똘 뭉쳤다. 입헌민주당 등 5개 주요 야당은 후보를 단일화해 자민당 타도에 나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오히려 지난 선거보다 의석이 10석 줄었다.

극우정당의 약진에 일본 유권자들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오사카 사람은 바보”라는 조롱도 잇따랐다. 특히 오사카와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도쿄에서 이번 결과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도쿄 사람들은 상업이 발달한 오사카 쪽 사람들을 ‘돈만 밝히고 거칠고 제멋대로’라고 삐딱하게 보는 반면, 오사카 사람들은 도쿄 사람들을 ‘깍쟁이 같고 점잖은 척한다’고 폄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유신회가 오사카 지역구를 휩쓴 결과에 대해 도쿄에서는 “오사카 사람들이 반지성적이라 극우정당에 투표했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 (사진=AFP)
일본유신회에 투표했다는 이유로 이처럼 격한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유신회가 자민당 뺨치는 우익정당이라서다. 일본유신회 소속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가 지난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것을 두고 격렬히 항의하다 자매결연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 2019년 8월에는 위안부 소녀상을 옹호한 아이치현 지사를 퇴출시키겠다며 주민 43만명 서명을 받았는데, 이들 중 80% 넘는 서명이 가짜로 드러났다. 당시 아이치현 지사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요시무라 지사를 비난했으며 이는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요시무라의 스승도 그에 못지않은 극우 인사다. 일본유신회 전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는 2013년 오사카시장 시절 “일본군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위안부가 필요했다”고 발언해 도마에 올랐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혐오스러운 발언”이라며 하시모토를 규탄했다.

“위안부는 일본군 정신안정을 위해 필요했다”고 발언하는 하시모토 토루 (사진=AFP)
하지만 일본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오사카에서 일본유신회 돌풍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오사카부의회 의원 선거나 오사카 시의회의원 선거, 지사와 시장 선거에서 일본유신회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유로는 먼저 오사카에서 출발한 정당답게 ‘오사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오사카 정당’이란 인식을 줬다는 점이 꼽힌다. 일본유신회는 지난 2012년 전국 정당으로는 이례적으로 당 본부를 오사카에 두면서 의원 정수를 109석에서 88석으로 삭감하고, 국회의원 세비를 30% 깎기로 했다.

마츠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사진=AFP)
내가 낸 세금은 내가 돌려받는다는 인식을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일본유신회 소속 마츠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급식비를 무상화하고 사립고등학교는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자녀가 있는 가정에 피부로 와닿는 정책을 편 끝에 일본유신회는 노인들에게만 과잉복지를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는 자민당을 누르고 오사카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책에 있어서도 일본유신회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ABC텔레비전과 JX통신사가 7~10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0~77%는 일본유신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주민들에게 코로나19 재난 대응을 적극 설명하는 등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이유가 컸다. 실제 미디어 정치에 능한 요시무라 오사카부 지사는 공식 기자회견을 자주 열었고, 마이니치방송과 요미우리텔레비전 등 주요 언론들이 이를 중계했다. 거의 매일 TV에 얼굴을 비춘 결과, 47도도부현의 지사 중 일본인들이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아는 지자체장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와 요시무라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다만 일본유신회가 ‘오사카 안 개구리’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유신회의 도약이 요시무라 지사 개인의 인기에 기댈뿐더러 오사카 지역만을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요시노리 마사히로 간사이대 교수는 “일본유신회는 수차례 이합집산을 거쳐 오사카에 특화된 정당이 됐다”며 “유권자들은 일본유신회를 오사카 정당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내다봤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