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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지난 2015년 2월 서울 은평구의 한 단독주택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설 연휴(2월 18~20일) 직후였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마지막 용돈 10만원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던 그는 배우자나 자식 없이 혼자 살았다.
이 남성의 경우처럼 명절이 끝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명절에 가족·친구들을 만나면서 겪는 박탈감과 불화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우울감이 보이는 가족·친구들에게 명절 이후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소보다 명절 끝나고 자살자↑…명절 당일보다도 많아
5일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설날·추석 등 명절 연휴가 끝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평소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 명절(설날·추석) 연휴가 끝난 후 사흘간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하루 평균 △2017년 37.5명 △2016년 38.3명 △2015년 43.8명에 달한다. 전체 평균이 △2017년 34.1명 △2016년 35.7명 △2015년 37.2명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명절 직후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명절 당일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추세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자료를 보면 재작년 기준 명절 연휴가 끝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은 명절 연휴 기간보다 하루 평균 40.9%(26.6명→37.5명)가 증가했다. 연도별로는 같은 기간 2016년에는 31.6%(29.1명→38.3명) 늘었고, 2015년에는 45.6%(30.1명→43.8명)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명절이 우울감 키울 수 있어…“명절 끝나고 전화 한 통, 안부 물어주세요”
명절 직후 자살이 급증하는 이유로 ‘우울감’과 ‘가정불화’를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절 기간 중 가족·친구들과 비교를 당하거나 가정불화가 겪는 경우가 많다”며 “당시의 우울감과 분노가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만 9000명 중 지난 1년간 자살 충동을 느낀 사람은 5.1%에 달했다. 그 원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37.3%)이 가장 높았다. 뒤 이어 △질환·장애(15.2%) △가정불화(14.1%) △외로움, 고독(12.3%)이 꼽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가정불화·외로움 등이 극에 달하는 시기가 바로 명절”이라고 설명했다. 명절의 특성상 대중 매체 혹은 주변 지인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혹은 문화에 따른 가족 간의 갈등 등도 이러한 선택의 요인이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명절 이후에도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특별히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간단한 인사라도 이들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명절 이후 ‘잘 들어갔느냐’ ‘힘들어 보이던데 괜찮으냐’ ‘너무 힘들면 상담을 해보라’는 등의 안부를 지속적으로 물어야 한다”며 “특히 가족과 불화가 있거나 혼자 명절을 보낸 주변인들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신 부센터장은 “명절 기간과 그 이후 찾아오는 극심한 우울감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살 예방 상담을 권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