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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의진 기자] 연세대·고려대·한국과학기술원(KAIST)·포항공대 등 국내 주요 대학들이 계약학과 개설에 나서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하려는 기업과 취업률 제고로 우수 인재를 선점하려는 대학이 손잡은 사례다.
9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는 지난해 12월 LG디스플레이와 협약을 맺고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인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를 설립하기로 했다. 연세대는 오는 2023학년도부터 매년 30명씩 신입생을 선발한다. 모든 입학생은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고, 졸업 후 LG디스플레이에 취업하는 것도 보장받게 된다. 학생들의 입학 후 졸업까지 소요되는 학비는 모두 LG디스플레이가 부담한다. 기업 입장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KAIST와 포항공대도 지난해 11월 각각 삼성전자와 협약을 맺고, 반도체 분야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KAIST는 올해부터 매년 100명의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신입생을 선발한다. 포항공대는 내년부터 해마다 40명씩 ‘반도체공학과’ 입학생을 모집하게 된다. 이들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도 등록금 전액이 지원된다. 삼성전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학생들은 졸업 후 삼성전자에 취업하게 된다.
이에 앞서 고려대는 2021학년도부터 SK하이닉스와 협력해 ‘반도체공학과’를 신설, 반도체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시작했다. 고려대는 매년 30명의 입학생을 선발하고, 합격생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이 역시 모든 재원은 SK하이닉스가 부담하고, 학생들은 SK하이닉스 취업을 보장받는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학과를 개설·운영하는 전공 과정을 말한다. 산업체 수요를 반영한 직무지식·기술을 학과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고, 학생들은 해당 기업의 채용이 보장된 상태에서 학과 교육을 이수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계약학과가 가장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6년이다. 당시 성균관대 삼성전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개설했다. 삼성그룹이 지난 1996년 성균관대를 인수한 뒤 반도체 고급인력을 확보하고자 관련 학과를 신설한 경우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계약학과 신설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산업계 무게중심이 인공지능(AI)·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디지털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최근 차세대 공정·소자가 개발되면서 관련 인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계약학과 신설이 잇따르고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대학과 협력해 직접 인력 양성 투자에 나서면서 계약학과 설립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계약학과는 기업의 자본을 활용해 대학들도 교육·연구 기반을 개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교육 모델”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계약학과 개설을 통해 인재를 확보하고, 대학은 산업체 수요를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학생들 중에서도 졸업 후 취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약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2학년도 정시모집 원서접수 마감 결과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5.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앞서 수시모집에서도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16.7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도 수시에서 131.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험생들이 취업이 보장되는 전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어 계약학과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