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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제 유전자가 이상이 있는 거죠. 저도 아빠처럼 심근경색이 오는 거죠? 저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건강한 생활을 하는 데 심장병에 걸리는 거죠.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현재 심장 기능에 문제도 없고,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너무 안타깝다. 나에게서 뭔가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까 봐 걱정하는 환자를 향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SNP 검사를 하셨네요. 가족분들은 검사하셨나요? 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셨지요? 어머니는 심장병이 있나요? 유전자 검사 비용은 어떠했나요? 혹시 유전자 검사 후, 의사는 만나셨는지요. 정확히 어떻게 설명을 들으셨나요”
환자의 아버지는 담배를 오랫동안 피웠고, 혈압 조절을 잘 못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특별한 병은 없었고, 유전자 비용은 20만 원 내외가 들었다고 한다. 검사를 진행하고 의사를 만난 적은 없으며, 결과지만을 받았고, 따로 면담은 없었다. 유전자 검사지에는 심장질환이 생길 확률이 있습니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환자는 요즘 유행하는 지옥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마치 언젠가는 자신이 심장병에 걸려 죽을 사람처럼 두려워하는 환자를 보면서 천천히 설명해 드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문제 되지 않고, 정기적으로 검사하시면 더 건강해지십니다. 일반적인 운동과 식이 요법을 잘 하시고요. 아버님에게 심근경색이 왔던 건 남자고, 연세가 들면서 담배도 지속적으로 피우고, 혈압 조절을 못하셨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혈압이 있으니 환자분도 혈압이 생길 가능성이 있지만 생활습관을 교정하면서 혈압이 높아졌을 때, 제때 잘 약물을 복용하시면 심근경색이 올 확률은 떨어집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 되지요. 지금처럼 불안해하시면 없는 병도 생기겠어요. 그리고 검사하신 SNP 검사에서 병을 찾는다는 건 바다의 모래알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아요. 어떤 한 질환을 예측하기 어렵고 이상 소견이 있다고 반드시 병이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아울러 심장 유전자 전문의가 상담한 내용이 없어서 더 불안하신 점도 있습니다.
2003년 Human Genome Project의 완성 이후 개개인의 고유한 유전체학 정보를 통해 질병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나아가 질병 발생을 예측하고 치료에 활용하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가속화되고 있다.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 이란 근거중심의 보건학적 통계에 근거한 표준 치료 방법과는 달리 개인의 특성 즉 가족력, 위험인자(risk factor), 개인 고유의 병력 등의 지식과 함께 유전적 특성의 차이를 고려하여 좀 더 세심한 치료를 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의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base - A,G,C,T의 조합)로 구성돼 있는데, 서로 다른 인간의 DNA는 99.7%가 동일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약 0.3%, 즉 천 만개의 염기가 서로 다르게 되어 있는데 이 차이가 모든 인간의 다양한 형질(phenotype)을 결정한다. 평균 300~1000개의 염기(base)에 하나 꼴로 일어나는 염기의 변이(variant)가 그 인구 사회의 1% 이상에서 일어나는 흔한 변이를 가리켜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단일 염기 다형성)라고 한다. 사람마다 4~5백만개의 SNP를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흔한 변이가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 가슴이 불편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보조개가 있고, 어떤 환자는 고지혈증이 더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몇몇 SNP들은 특정 약물의 대사와 연관이 있기도 하고, 특정 질환의 위험도를 예측하는데 연관 분석을 통해 질환의 발생과 통계적 연관성이 확인되어 심혈관질환, 당뇨, 암과 같은 질환의 기전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DNA에 염기의 변이가 있다고 해서 항상 단백질 합성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환경적인 요인, 잠재 돌연변이, 과오 돌연변이의 유무 등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서 환자에게 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심근경색이나 고혈압과 같은 질환은 유전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요인 (혈압, 술, 담배, 당뇨, 과체중, 운동 부족, 식습관)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환자는 정기적인 고지혈증 검사와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고, 운동습관을 들이게 되면 심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더 낮아지기 때문에 괜한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특정 유전자를 가진 유전적인 요소가 질병을 일으키게 될 확률이 큰 심장병들이 있는데 비후성 심근병증, 확장성 심근병증이나 부정맥 관련 심장 질환, 아밀로이드증 혹은 말판 증후군 같은 병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는 직계 가족 중에 병이 있을 경우,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현재 심장 혹은 혈관에 병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같은 유전자의 변이가 있을 경우, 증상이 없더라도 추적관찰을 통해 필요시 수술 혹은 시술적 요법이나 약물 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병이 있다고 자식들에게 물려 준다는 죄책감 혹은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 유전적 소인이 큰 말판 증후군을 가진 내 환자의 경우를 예를 들면 한 환자가 말판증후군으로 내원하여 자녀들을 검사하던 중 모든 자녀들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명의 자녀는 정기적으로 외래를 다니면서 적정 시기에 대동맥 수술을 받고 경과 관찰을 하면서 문제없이 지내고 있지만, 다른 자녀는 두려움에 병원 방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연락도 끊었다. 결국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던 자녀는 응급실에 대동맥 박리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하며, 겨우 생존하여 수술하고, 현재는 힘들게 회복하여 외래를 다니고 있다. 그 분도 정기적으로 외래를 방문하였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다른 예로 같은 유전자 유형을 가진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가 있었는데 같은 유전자라 하더라도 한 분은 급성 심정지가 오고, 심장 이식을 할 정도로 급격히 발전하였으나 그 동생은 아무런 증상 없이 60대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표현형은 환경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게 되고, 아울러 정기적인 외래 추적관찰을 통해 심장 이상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으니 유전적인 요소에 미리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전적 이상만 있다고 해서 치료를 결정하고, 미래가 미리 점 지어진 것이 아니다. 심장 초음파, 심전도검사, 그 외의 혈액 검사, 생활습관 등 개별 환자에서 병의 진행 정도에 따른 심장 질환의 위험도와 돌연사의 위험도를 평가해 본 후, 그에 맞는 치료와 경과 관찰을 하는 것이 맞춤형 치료의 근본이며, 따라서 오랜 경험과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전문의에게 유전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