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한 주민센터에 ‘담배꽁초’ 뭉치를 제출하자 담당 직원이 저울로 계량하더니 이같이 안내했다. 꽁초 좀 주웠더니 착하다고 용돈을 받는 기분이다. 커피 두 잔 혹은 밥 한 끼 사 먹을 수 있는 ‘만원의 행복’이다. 용산구청이 시행하고 있는 ‘담배꽁초 수거 보상제’에 직접 참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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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22일 오전 중 틈날 때마다 집게와 장갑, 비닐지퍼팩 등을 챙겨 주변에서 직접 담배꽁초를 주워봤다. 우선 아파트 단지 구석마다 깡통 등으로 마련된 임시(?)재떨이를 살폈지만 이미 누군가 수거해 가고 몇 개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왜 단지 곳곳에 깡통들이 놓여 있고 이른 아침마다 재떨이를 비워주는 어르신이 있었는지 문득 이해가 됐다.
이렇게 한두 개씩 줍다 보면 답이 없을 것 같아 길거리 배수구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격자모양 철제 보호 덮개 사이사이에 수많은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 낙엽이 엉켜 있었다. 쪼그려 앉아 집게로 담배꽁초만 하나씩 빼내고 있노라니 딱해 보였는지, 인근에서 지켜보던 한 60대 남성이 다가와 “힘들게 (꽁초) 하나씩 꺼내지 말고 배수구 덮개 열고 하면 빠르겠다”고 조언을 해줬다. 한 30대 남성은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다가 눈치가 보였는지 슬며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제 덮개 사이에 배수로 입구에 쌓인 각종 이물질을 긁어내고 담배꽁초를 솎아냈다. 꽁초는 지퍼팩에 담아 수거했지만, 남겨진 담뱃갑과 과자 비닐 포장지 등 쓰레기와 낙엽들은 인근에 별도 쓰레기통이 있지 않는 한 처치 곤란이었다. 또 배수로 깊숙이 떨어진 꽁초는 짧은 집게로 줍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배수구 1개당 꽁초가 많게는 100개씩 나왔고 수거 시간은 10~15분가량 소요됐다. 영하권에 칼바람이 불던 추운 날씨에 1시간 정도 쪼그려 앉아 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 손목 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이 좋은 일한다”며 근처 한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건네준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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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는 올해 예산 1200만원을 배정하고 소진 시까지 연중 운영한다. 수거된 담배꽁초는 개별 주민센터에서 폐기 처리한다. 다만 1주일에 한 번만 수거하기 때문에 한 주 동안 각자 주거지 등에서 수거한 꽁초를 보관해야 한다. 밀봉을 해도 고약하게 찌든 담배 냄새가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용산구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 동안 20여명의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담배꽁초 수거 보상제를 통해 수거한 담배꽁초량은 약 77㎏으로 합계 145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용산구뿐 아니라 서울에서 동일 사업(보상금 책정 기준 상이)을 하고 있는 성동·도봉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북구는 예산과 타당성 부족으로 사업을 접었다.
다만 지자체 예산 투입 대비 효과성에 의문도 따른다. 해당 구청 측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매년 늘며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라 잘 ‘티’가 나지 않으면서 세금은 들여도 길거리 곳곳에 담배꽁초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환경공무관들의 노동력과 인력이 딱히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거리 정화 참여를 유도하는 취지는 좋지만, 비위생적이고 궂은 일인데 최저임금 시급에도 못 미치니 참여율이 저조한 것”이라며 “흡연 구역이 아닌 곳에 꽁초를 모으기 위한 깡통을 두면서 오히려 흡연자들이 몰리거나 재떨이 혹은 쓰레기통에서 모아가는 부작용도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예산을 투입한 행정 사업은 실효성을 따져보며 보다 적합하고 필요한 공공서비스로 디자인해 가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면서 “그저 금연거리를 늘리고 길거리 쓰레기통을 없애면 담배꽁초 무단 투기가 증가하는데, 같은 예산으로 곳곳에 흡연 구역과 부스를 설치하는 게 꽁초 수거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