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의 심장토크]"우주의 빅뱅 확인방법으로 심장을 진단한다" 도플러 효과

이순용 기자I 2020.12.13 08:11:53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높아진다 싶으면 내 쪽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구급차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나를 지나는 순간 사이렌 소리는 순식간에 낮은 음으로 바뀐다. 단지 가까이 다가와서 큰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소리의 높낮이가 차이가 나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구급차가 반대 차선에 서있을 때 내 차가 빨리 그 옆을 지나갈 때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소리를 내는 물체가 움직이거나 듣는 사람이 움직이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 소리의 주파수가 변형(frequency shift)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모든 종류의 파동에서 성립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를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라고 한다. 1842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도플러(Cristian Doppler)’가 음파에서 이러한 현상을 발견해서 도플러 효과로 불린다. 도플러 효과는 과속 탐지를 하는 스피드건, 비행기의 속도를 측정하는 도플러 레이더 그리고 빅뱅으로 인한 우주의 팽창을 관찰하는 망원경에도 쓰인다.

심장은 놀라운 효율로 펌프 운동을 해서 혈액이 혈관을 타고 몸속을 흐르도록 해 준다. 그리고 혈액은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방향으로 정해진 길을 따라 흐른다. 그런데 심장안에 비정상적인 구멍이 있거나,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역류가 생기거나, 좁아진 곳이 생기면 혈액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된다. 커다란 강에 잔잔히 흐르던 물이 여울목을 만나면 물살이 빨라지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심장 초음파는 초음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서 심장 내부의 구조를 화면에 표시해서 심장 질환을 진단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진단 기기다. 심장의 구조를 직접 관찰해서 이상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장 내를 흐르는 혈액이 잔잔히 흐르는지 아니면 빠르게 소용돌이 치면서 흐르는 지를 관찰해서 거꾸로 구조적인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또 그 구조적 이상이 끼치는 영향도를 분석하기도 한다.

초음파 기기에서 발생 시킨 음파가 혈구(적혈구, 백혈구)에 부딪히면 나타나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서 혈액이 흐르는 속도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초음파 탐침자 쪽을 향해서 움직이는 혈구들은 붉은 색으로, 멀어지는 쪽으로 움직이는 혈구들은 푸른색으로 표시하는 칼라도플러(Color Doppler)와 혈구들의 속도를 수치로 표시하는 연속파형도플러/간헐파형도플러가 있다. 혈액이 소용돌이 치면서 흐르면 칼라도플러에서는 붉은색, 푸른색 등 다양한 색이 뭉쳐져서 나타나고, 이런 부위에서 속도를 측정하면 정상보다 훨씬 높은 속도의 혈액 흐름을 확인함으로써 심장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첨단 기술을 응용한 심장초음파기기들이 많이 보급되어 심장질환의 진단이 용이해 졌다. 하지만, 과거에는 청진기로 혈액이 흐를 때 나는 소리의 크기와 양상, 소리가 나는 위치와 시점 그리고 환자의 전신 상태에만 의존하여 진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에 진단이 어려웠고, 소수의 명의들만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의과대학 학생일 때 대가이신 선생님들께서 청진기로 환자의 심음을 청진하고, 환자의 판막 상태나 심장 기형에 대한 진단을 내리시던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런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키웠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첨단기기의 도움으로 예전 선생님들의 흉내는 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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