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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패션쇼의 결과는 ‘지구상 최고의 쇼’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했다. 미국 내 시청률이 1.5%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2016년 패션쇼와 비교해 무려 30%나 낮아진 수치였다. 900만 명대에 달했던 시청자 수도 400만 명대로 추락했다. 중국 정부의 각종 제재로 간판 모델인 지지 하디드와 유명 팝가수 케이티 페리가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처참한 성적표다.
패션쇼 시청률은 최근 빅토리아 시크릿이 처한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기업인 L브랜드의 투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2분기 빅토리아 시크릿 북미 지역 매장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5%씩 감소했다. 최근에는 연내 매장 20개를 닫겠다고 밝혔다. 미국 패션 전문지 ‘WWD’에 따르면 작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월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최대 14% 감소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위기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여성 인권 운동과 무관치 않다. 2006년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시작한 ‘미투(Me Too·성추행 고발)’ 운동이 지난해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로 미국 전역에서 지지를 받았다. 미투 운동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지며 여성 인권 향상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미투 운동과 함께 일어난 탈(脫) 코르셋(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는 의미) 열풍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위기를 고착화했다. 코르셋은 체형보정속옷으로, 여성 억압적 문화를 상징한다. 탈 코르셋은 화장을 하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크릿이 여성 인권 향상이라는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인식됐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고브(YouGov)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핵심 고객층인 18~49세 여성의 60%가 ‘여성이 더 당당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행보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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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브라렛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속옷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올해(1~8월) 브라렛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1%나 늘었다. 좋은사람들이 지난 6월 출시한 ‘라이프 브라’는 한 달 만에 준비 수량의 70%를 소진했다. 라이브 브라는 와이어 등 브래지어의 대표적인 불편 요소를 없애 답답함을 줄인 제품이다. 봉제선도 최소화하고 가슴둘레를 감싸주는 크롭탑 스타일을 적용해 활동성을 높였다.
강지영 비비안 디자인 팀장은 “여성들이 속옷을 고를 때 편안한 착용감을 중요시하면서 노와이어 브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브라렛은 젊은 층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브라렛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신세계백화점이 운영하는 란제리 편집매장 ‘엘라코닉’에서는 전체 제품의 90%를 와이어가 없는 제품으로 채웠다. 이에 따라 브라렛 제품의 매출도 늘어 비중이 전체의 65%까지 상승했다.
브라렛의 인기는 온라인몰에서 더 폭발적이다. 소셜커머스 티몬에선 올해(1~8월) 브라렛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049%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가슴을 모아주는 볼륨업 브라는 반대로 매출이 28%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브라렛이 2016년 국내 처음 소개돼 차츰 인기를 얻다가 올해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며 “편안한 옷차림을 추구하는 트렌드와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여성 인권 운동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라렛(Bralette)은…
와이어가 없는 브래지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브래지어에는 가슴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와이어를 넣는데, 최근 스타일 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성 소비자가 늘며 와이어를 없앤 속옷이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