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는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제작사가 계약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공식적으로 정부 지원금 귀속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분야 정부 지원금 집행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더 살펴봐야 한다”고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EBS, 독립PD에 계약 위반 근거로 정부지원 귀속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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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PD는 지난해 8월 EBS와 50분 길이 2부작 야생 다큐 ‘야수의 방주’ 제작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계약 금액은 편당 6970만원으로 총 1억3920만원(2부작)이다. 박 PD가 계획했던 금액의 3분의 2수준이다. 방영 시기는 오는 10월중으로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코너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영된다.
박 PD와 EBS 간 갈등은 박PD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에서 주관하는 ‘2017년 차세대방송용콘텐츠(UHD) 제작지원’ 사업에 지원한 후 시작했다. 박 PD는 중소 제작사를 대상으로 ‘중소 사업자 부문’에 ‘야수의 방주’로 지원했다. 지난 4월 ‘야수의 방주’는 선정돼 1억2000만원 지원금을 받게 됐다.
EBS는 박 PD가 사전에 정부지원금 지원 사실을 고지 않아 계약 위반사항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PD가 받은 정부지원금중 40%를 귀속하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전했다. 박 PD와 EBS가 지난해 8월 사인한 표준 계약서 제18조 3항과 제16조가 근거였다.
18조는 제작사가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제3자로부터 EBS와 합의 없이 제작비를 지원 받은 경우 제작비 일부 또는 전액을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16조 4항에는 ‘협찬 유치 시 외주 제작사 상생협력 방안에 따른다’고 돼 있다.
EBS는 16조 4항에 언급된 ‘외주 제작사 상생협력 방안’에 따라 박 PD가 받을 정부 지원금을 귀속하겠다고 비공식적으로 밝혔다. EBS 측 직원이 박 PD에 비공식적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상생협력방안 기준에서 20%는 (제작사) 인센티브, 40%는 제작비 투여에 쓰인다. 나머지 40%가 EBS 간접비 환수로 돼 있다. 박 PD가 받은 정부 지원금중 40%를 EBS가 귀속하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지원금중 일부가 EBS로 귀속됐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허위 영수증 발행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박 PD는 “정부지원금은 우리 내부로는 인건비로도 못 쓰고 오로지 제작비(직접비)로만 쓰게 될 정도로 엄격히 관리된다”며 “가짜 영수증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EBS는 자기네들 알바 아니다는 식”이라고 비난했다.
◇EBS 해명 일부 사실과 달라..사전 모의 정황도
EBS 측은 이번 문제의 원인이 박 PD에 있다고 반박했다. 23일 해명 자료에서 EBS는 박 PD가 EBS와의 계약 사실을 밝히지 않고 RAPA의 지원사업에 응모했다고 전했다. 제작사가 EBS와 사전 협의 과정 없이 RAPA의 1인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한 게 계약서 상 위반사항이라고 지적했다. EBS는 박 PD가 지원금 수령을 포기했으며 지원금의 40% 귀속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EBS의 주장은 RAPA 확인 취재 결과 일부 허위로 드러났다. RAPA 관계자는 “지원금은 선금과 잔금으로 나눠 지급한다”며 “선금은 이미 제작사에 지급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EBS는 정부지원금 응모를 통해 제작비를 벌충하도록 제작자에 ‘비공식적’으로 조언한 정황마저 포착됐다. 박 PD는 “(지난해 8월) EBS 외주제작 관련 부서인 편성기획팀과 제작을 논의하던 중 제작비가 상당히 깎인 채 계약이 됐다”며 “대신 다음해 초 정부지원 사업이 있으니 응모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EBS 직원과의 대화 녹취를 근거로 계약 초기 EBS가 정부지원 사업 응모를 권유했다고 전했다.
예산 집행 부처인 미래부와 행사 수행 기관인 RAPA의 관련 사업 담당자들은 사실 관계를 더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차세대방송용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공모 당시 제작사가 방송사와 계약 사실을 명기하도록 의무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처럼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국가 예산을 중복 지원받지 않는다면 지원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EBS와 계약한 금액은 제작자 자체 조달 제작 금액이다. 정부에서 관여할 사항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미래부 관계자는 “단정 지을 수 없어도 (정부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됐다고 가정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느낌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