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두산백과사전에서 ‘전세’를 검색하면 이런 정의가 나온다. ‘전세는 외국의 입법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관습상의 부동산, 특히 건물의 대차(貸借) 형태다. 8·15 광복 전까지는 경향(서울지역) 일대에서 이용될 뿐이었으나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전에 나온 정의처럼 전세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제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세제도 자체가 없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다달이 임대료를 내고 집에 거주하는 월세가 보편화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돈을 내고 집을 사 거주하는 자가(自家) 형태만 있을 뿐이다.
전세는 관행처럼 내려오던 것이어서 전세제도에 대한 기록이 정확하게 남겨져 있지 않다. 한양대 도시대학원 윤솔아씨가 쓴 석사학위 논문(‘구한말 이후 전세 계약의 논의 변화와 특성 분석’)에 따르면 전세와 관련된 공식적인 자료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보고서’가 유일하다. 당시 일본은 수도였던 경성을 포함해 수원·청주·대구 등 전국 70개 지역에 조사관을 파견해 직접 한국인에게 묻고 그 응답을 기록하는 구관조사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작성된 관습보고서에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의 방법이며, 전세금액은 가옥의 대가의 반액 내지 7·8할이 통례’라고 서술돼 있다. 집값의 반값 또는 70~80%의 보증금을 내고 주택을 빌렸다는 것이다. 또 보고서에는 전세기간은 통상 1년이며, 가계현록(家契懸錄·지금의 확정일자)을 받을 경우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참고로 가계(家券)는 주택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관에서 발급하는 문서로 고종 30년 때인 1893년에 처음 발급됐다.
전세제도에 대한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학계에서는 중국의 전(典)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원시시대 중국에서는 물권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전당(典當)제도가 있었는데 이 제도가 우리나라로 넘어와 전세제도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 부를 축적하기 위해 고리대가 유행했는데, 이때 전당이 행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과 형태가 비슷한 전세제도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인과 농촌 인구 이동으로 주택 수요가 증가하면서 나타났다. 주택 수요의 급증이 전세제도를 발달시킨 것이다.
전세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된 1960년부터다. 부동산등기법이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제도권 주택금융이 부실했던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전세에 관심을 가졌다. 집값이 뛰던 시절이라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적잖은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를 통해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전세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공공의 역할도 함께 했다. 최근에는 집값 하락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사람이 줄면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반대로 집주인들은 저금리 시대에 더 돈이 되는 월세를 선호해 앞으로 주택 임대차시장이 월세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오래 전부터 관행으로 이어져오던 전세가 가까운 미래에는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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