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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샌드위치, 3137만원에 팔린 까닭

오현주 기자I 2019.01.16 00:12:00

착각·편향 빠지는 지각의 왜곡 파헤쳐
작동 멈춘 낡은 패러다임에 얽매인 탓
훈련으로 지각지능 키워 마음무장해야
▲지각지능|브라이언 박서 와클러|344쪽|소소의책

성모마리아 형상이 찍힌 듯한 ‘그릴 치즈 샌드위치’. 2004년 한 경매에서 2만 8000달러(약 3137만원)에 팔렸다. 이 ‘착각’을 두고 저자 브라이언 박스 와클러는 낮은 ‘지각지능’이 벌인 대표적인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했다(사진=AFP/뉴스1).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그 남자는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 다섯 살 때 2층 침실 창문 밖에서 맴도는 외계인을 봤다고. 설사 진짜라고 해도 40년 전 일이다. 외계인과 애증을 쌓아도 한보따리 일 만큼의 세월이 아닌가. 재미있는 건 그의 생각이다. 그날 집 창문 밖에 외계인이 나타났을 리가 없다는 걸 그가 ‘논리적으로’ 알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세상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확신도 없다. 그런데 말이다. 길을 걷다가 헬멧 쓴 사람이 스치기만 해도 흠칫 놀란단다. 유리헬멧 속 녹색 얼굴과 툭 튀어나온 눈, 머리에 달린 안테나까지, 그날의 외계인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서다. 진짜 외계인이 있건 말건, 그의 기억은 ‘실재’다.

#2. 3∼4년 전 쯤인가. 미국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맛집이냐고? 글쎄다. 샌드위치를 파는 집인 건 맞는데 감히 맛으로 따질 순 없는 샌드위치다 보니 말이다. 제품명은 ‘그릴 치즈 샌드위치의 정수’, 가격은 214달러(약 24만원). 페리뇽샴페인과 24캐럿짜리 식용 금가루를 섞어 주무른 빵에 하얀 송로버섯을 녹인 버터를 발랐다니. 이보다 더 특이한 건 샌드위치가 가진 명예란 거다. 기네스북에 올랐단 기록을 가졌다.

기왕 샌드위치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지독한 사례를 보자. 2004년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한 경매에 나왔다는데. 명목은 ‘잘 보존된 10년 된 그릴 치즈 샌드위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게 ‘훅’ 팔렸다는 것. 2만 8000달러(약 3137만원)란 거금에. 그건 그렇고 10년 전 누군가는 왜 샌드위치를 먹다 말았을까. 성모마리아 형상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샌드위치 겉면에 프라이팬 자국 대신 찍힌. 그게 신의 계시가 아니라면 어찌 수년간 곰팡이 하나 생기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모두는 ‘착각’의 경우다. 왜 사람들은 뇌 한쪽에 착각 한 덩어리씩을 품고 사는가가 궁금한 인간지각전문가에 의해 뽑혀 나왔다. 오랜 세월 인간 마음의 작동방식을 연구해온 그가 올려세운 ‘헷갈리는 감각과 지각 세계’ 중 극히 일부다. 우리가 누군가의 판단을 비아냥거릴 때 날리는 “착각하고 있네!’의 그 착각 맞다. 세상에 떠도는 그 말의 횟수가 증명하듯, 사람의 감각에 영향을 주는 ‘지각의 왜곡’이 무수하게 벌어진다는 거다.

예컨대 샌드위치에 ‘강림한’ 성모마리아를 믿고 말고는, 지갑을 열 ‘또 다른 착각자’의 몫이 될 테니까. 착각은 샌드위치 주인의 것이지만 ‘완전한 착각’을 이루는 건 ‘또 다른 착각자’의 협조란 소리다. 만약 이 사실을 두고 ‘어처구니 없다’며 웃어댈 찰나였다면 잠깐 신중해지는 게 좋겠다. 내용만 다를 뿐 이런 일은 흔히 벌어지니까. TV 한 프로그램에서 ‘미친 맛집’으로 소개한 국수집이 있다고 치자. 오늘도 그 집을 찾아,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기다려 먹어줬다면, 앞선 착각자들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얘기다.

저자에게 방대한 연구를 자극한 지점이 여기다. ‘왜 우리의 감각과 실재는 당최 일치하질 않는가.’ 이 의문 한 점이 세상에 널린 수많은 편견과 오해, 환상과 망상, 자기기만에 빠지는 메커니즘을 파헤치게 했다는 거다. 오랜 기간 인간 마음을 쥐락펴락해온 전문가답게 책이 다룬 범위는 광범위하다. 뇌 기능 관련 질환부터 소비성향과 마니아기질, 운동능력과 인지습관까지. 그뿐인가. 자동차대리점에서 얻어먹은 커피와 스낵 때문에 덜컥 자동차를 사들이고, 좋아하는 가수에 빠져 CD를 수십장 사들이는 행동 양태 등을 모조리 해부한다.

△착각·자기기만·망상에서 벗어나려면

저자는 경직된 신념을 고집하는 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관찰·분석을 시도한다. 보이는 게 모두 실재가 아니라고 다그치는 건 기본. 허영심에 속고, 소유욕에 말리고. 시간에 치이는 장면을 차례로 ‘까보인다’. 결정적인 원인은 작동하지도 않는 낡은 패러다임에 얽매인 탓이라고 했다. 물론 “마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는 펼쳐뒀다. 그럼에도 기억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그 근거가 뭔지 더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건데.

도구가 있다. ‘지각지능’이다. ‘깨우친 지각’이란 뜻인데, 저자의 뜻풀이 그대를 옮기면 이거다. “환상과 실재를 구별하기 위해 우리 경험을 해석하고 때론 조작하는 방식”이라고. 중립적인 개념인 게 맞다. IQ처럼 높고 낮은 차이만 있을 뿐. IQ와 다른 점이라면 ‘획득된 기술’이란다. 자각에서 비롯되지만 연습을 거쳐 습관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각지능이 높다는 게 뭘까. 해석력? 가공술? 조작술? 아니다. 사람을 파괴하려 드는 잘못된 견해를 찾아내 무찌르는 ‘저격술’ 정도가 될 거다.

스포츠팀의 협업은 물론 승리를 좌우하는 것도, 과학이나 통계에 눈이 머는 실수를 잡아내는 것도 지각지능이란다. 외계인이 눈앞에 왔다갔다하는 건 애교라 쳐도, 인구의 5%쯤 된다는 건강염려증도 설명해낼 수 있단다. 인간의 궁극적 착각이라 저자가 단언한 죽음에 직면할 때도 예외 없이 작동하고.

△훈련 통해 키운 지각지능만이 해결해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한다.” 책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철석같이 믿는 이 신념에 대한 도전처럼도 보인다. 안타깝지만 이 믿음은 잘못됐다고. 어째서? 지각은 살아온 경험, 내면의 생김새·활동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일상적인 착각과 편향이 수시로 들쑤시니까.

문제제기도 지각지능이고, 해결책도 지각지능이다. 그러니 지각지능에 걸리는 별별 행태가 다 나타나는 게 무리가 아니다. 다만 지각지능 하나면 세상의 갈등 대부분이 해소될 듯한 ‘새로운 착각’이 슬슬 삐져나오는 게 맹점이라고 할까.

결론은 단순하다. 훈련으로 지각지능을 키워 마음무장을 하자는 거다. 하지만 책 한 권을 털어봐도 도무지 멀쩡한 생각·판단이란 게 없어 보이는 허탈감은 어쩔 수가 없다. 저자가 풀어놓은 상황을 하나씩 짚다 보면 세상에 정상적인 뇌와 마음이 과연 남아 있는가 싶을 정도니까. 그게 미안했나. 슬쩍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팔아 물타기를 시도한다. “실재는 착각에 불과하지만 매우 집요한 착각”이라 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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