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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손의연 황현규 김보겸 기자] “여경이 부족해 다른 지역에서도 지원해달라고 하는데, 자는 시간에도 나가야 해요.” (서울 일선서 여경)
“요즘은 성 관련 문제도 있고 인권 문제도 있어서 여경과 함께 안 나가면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서울 지구대 남경)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이 여경 무용론까지 비화하는 등 여경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여경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여성 피해자나 피의자를 다루는 데 있어 남자 경찰들이 다루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현장 대응의 유연성도 남성보다 높아 긍정적 요소가 크다는 얘기다.
◇경찰, 여경 확대 정책 지속…2022년까지 비중 15%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여성 경찰관은 지난 4월 말 기준 1만4302명으로, 전체 경찰관 중 11.6%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를 넘긴 후 꾸준히 증가세다. 경찰은 오는 2022년까지 여경 비중을 1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전체 채용인원 중 약 25%를 여성으로 선발하고 있다.
경찰이 여경 채용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는 선진국의 여경 비율이 20% 안팎인 것을 고려할 때 국내 경찰의 여경 비율이 상당히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 실제 영국의 경우 여경 비율은 28.6%에 달하고 독일(23.7%)과 미국(LA 18.4%, 뉴욕 17.0%)·프랑스(17.1%) 등도 20%에 근접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림동 여경 논란에 따른 일부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러한 여경 확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현장 경찰관들이 나무랄 데 없이 침착하게 조치를 취했다”며 “그런 침착한 현장경찰의 대응에 대해 전 경찰을 대표해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힌 것도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고 이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여경 꼭 필요한 존재, 공권력 경시에 초점 맞춰야”
특히 치안 현장에서 여성 필요성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성범죄 수사와 여성 피해자 보호 등 분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여경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 실제 지난 2017년 말 기준 여경 1인당 여성 피해자 수는 33명으로, 남경 1인당 남성 피해자(7명)의 4배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피의자 수 역시 여경 확대 추세에 점차 줄어드는 추세긴 하지만 25명으로 남성(13명)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상황이다.
서울의 한 파출소장은 “최근 벌어진 여성 관련 시위도 마찬가지고 여성 피의자나 피해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들 대부분 여경과 수사하겠다고 원하는데다 남경들도 여성 피의자나 피해자를 불편해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장 경찰관은 “극단적으로 여자 화장실이나 여탕 등 남성 경찰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사건이 터지면 여경이 출동할 수밖에 없고 실제 다른 지역에 여경이 없다는 이유로 한밤중 휴게시간에 지원을 나간 적도 있다”며 “현장에서는 여경이 부족해 겪는 애로사항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일반적 분쟁에서도 여경의 유연한 대처 능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한 지구대 경찰관은 “사람을 대하는 일은 남경보단 여경이 유연하게 잘하는 편”이라며 “다양하고 많은 시민을 만나야 하는 경찰 직업 특성상 그런 능력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경찰들은 여경 무용론이 아닌 공권력 경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경찰로 구성된 경찰 내 학습모임 경찰젠더연구회는 “대림동 주취자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대한민국에 만연한 공권력 경시 풍조에 대한 경종이 돼야 하고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의 확산으로 오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경들도 현장에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한다면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한 파출소장은 “여경이 현장대응 능력이 없다고 지적하는데 경찰 차원에서 이를 보완해줄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요즘엔 경찰봉 하나만 들고 나가도 (여론의 질책을 받을까 봐) 눈치 봐야할 지경이라 최소한의 방어만 하는 게 전부”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