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어머니 C씨는 3일 전인 1월 9일 오후 2시께 둔기로 잔혹하게 살해된 채 A씨 부부에 의해 발견됐다. A씨 부부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남성의 DNA와 집 주변 CCTV를 통해 1월 17일 범인을 검거했다.
범인은 놀랍게도 A씨 친구 B씨(당시 39세)였다. 경찰에 붙잡힌 B씨는 “금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C씨가 저항을 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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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수사한 경남 진주경찰서는 C씨 집에서 사라진 금품이 거의 없고, A씨가 평소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B씨 진술을 토대로 A씨의 공범 가능성에 대해 B씨를 강하게 추궁했다.
◇경찰, 당사자 강력 부인에도… ‘존속살해범 검거’ 발표
B씨는 긴급체포된 후 경찰의 계속된 추궁 속에 “9개월 전에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친구 A씨의 사주를 받고 C씨를 살해했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느낌으로 A씨 부탁을 들어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A씨를 긴급체포한 후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진주경찰서는 사건을 대대적으로 ‘아들의 어머니 청부 존속살해’ 사건이라며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 C씨와 갈등을 겪던 A씨가 어머니 앞으로 가입한 5억원 상당의 생명보험을 타내고, 어머니의 기존 집을 허물로 원룸을 신축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했다는 것이 경찰 발표 내용이었다.
‘사전에 논의와 현장답사를 했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A씨로부터 들었다’는 B씨 진술 등이 핵심증거였다. 청부살인 대가로 1200만원이 건네졌다는 내용도 포함됐고, A씨가 휴대전화에서 ‘복어독’ 등을 검색한 적이 있다는 점도 존속살해 혐의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A씨는 일관되게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그는 “아버지와 오래전 이혼하고 홀로 지내신 어머니는 형과도 오래전 인연을 끊어 저 혼자 어머니를 돌봤다”며 “어머니 살인을 사주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창원지검 진주지청은 A씨 주장을 일축하고 경찰 송치 내용의 틀을 유지한 채 A씨와 B씨에게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檢도, 경찰 수사 그대로 인정해 ‘존속살해’ 기소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A씨 무죄’였다. B씨에 대해서만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검찰이 수사가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C씨 살인에 A씨 공모는 없다고 결론 냈다.
일단 전제사실인 ‘A씨와 어머니 C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검찰의 ‘불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C씨는 남편과 이혼 후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하지만 조현병 증세 등으로 큰 아들은 C씨와 연을 끊었고, A씨 홀로 어머니를 돌봤다.
A씨는 자신의 결혼으로 어머니가 혼자 지내게 되자 6000만원을 들여 집을 리모델링해줬고, 또 어머니가 조현병 증세로 이웃들과 갈등을 겪자 이웃집 두 채를 모두 사버려 분쟁 여지를 없애기도 했다.
또 매달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렸고 “집에 구멍이 났다”는 어머니의 이상한 말에도 아내와 함께 집을 방문해 어머니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평소 어머니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었지만 “불쌍한 어머니를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얘기를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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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전 반년 동안은 실적 저하로 임금이 줄었지만 월 평균 390만원 이상을 받았다. 심지어 A씨는 본인 명의 주택 3채를 보유해 매달 상당한 임대료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검찰이 또 다른 근거로 든 ‘사망보험금 5억원’의 경우도 실제 계약 당시 어머니의 서명과 정신병력 등을 기입하지 않아 실제 수령할 가능성이 적던 상황이었다. 법원은 보험설계사였던 A씨가 실적 차원에서 2014년 판촉 당시 가입한 허위보험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복어독’ 검색에 대해 A씨는 “당시 한 TV드라마에서 나온 내용을 검색해 본 것뿐”이라고 주장했는데, 법원도 복어독과 함께 검색된 다른 키워드가 해당 드라마에 나왔었고 검색 시점이 이와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 검경 수사 문제점 조목조목 지적
B씨의 오락가락 진술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사전에 함께 현장답사를 해 CCTV 위치 등을 확인해 범행계획과 동선을 짰다는 B씨 주장이 실제 현장 상황과 매우 달랐던 깃이다.
과거 수년간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살았서 집 주변 지리 등에 익숙한 A씨와 함께 확인했다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전답사 시점, 범행 구체적 모의 시점과 상황도 수차례 진술을 바꾼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B씨가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A씨와의 대질 후 시점 등을 꿰어 맞춘 듯한 모습도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근거가 됐다. 범행 이후 및 시신 발견 전후, 두 사람이 보험금 지급·카드깡 채무 상환 등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눈 것도 공범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근거가 됐다.
도어록 비밀번호 역시 A씨가 알려줬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결론 냈다. B씨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도어록 비밀번호와 실제 비밀번호는 차이가 났다. 또 범행 후 자기 물건을 찾기 위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B씨가 비밀번호를 제대로 입력하지 못해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 C씨 집 실제 비밀번호는 A씨 자녀 생년월일 관련 숫자였다. A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자녀 생일로 비밀번호를 설정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 자녀와도 가깝게 지냈던 B씨가 여러 번호를 눌러보던 중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아울러 1200만원이 오간 부분 역시 A씨와 B씨 사이의 평소 금전 거래로 봤을 때 ‘살인 청부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씨가 A씨 권유로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고 서로 급전이 필요할 땐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A씨는 사건 얼마 전 치킨가게 매출 부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B씨 요구로 B씨 가게 등에서 800만~900만원의 카드깡을 해주기도 했다. 매달 200만원씩 갚기로 했던 B씨는 당시 이 같은 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A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