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개원해 올해로 35주년을 맞이한 ‘금강선원’은 매주 참선지도와 경전강의를 통해 수많은 대중의 눈과 귀를 열어주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친 사람들만 30만여 명이 넘는다. 뜨거운 공부 열기를 이끈 중심에는 국내 대표적인 ‘학승’인 혜거스님(79)이 있다. 그는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통달했던 탄허스님(1913~1983)의 직계 제자다. “무엇을 하든 통달하라”고 가르쳤던 스승의 뒤를 이어 경전공부와 참선(參禪·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앉아 있는 수양법)을 통한 수행과 실천을 강조해 왔다.
혜거스님은 현재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장과 금강선원장,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탄허기념불교박물관에서 만난 혜거스님은 “지혜는 지식과 감성을 합한 것이기 때문에 지혜를 갖춘다면 시비와 분쟁의 마음을 끊을 수 있다”며 “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나라를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위한 지혜의 발심(發心·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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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거스님은 평생 공부와 명상을 통한 자기 수행을 피력해 왔다. 여전히 전쟁과 질병 등으로 불안한 시대에 명상과 마음 챙김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단순히 가부좌를 하고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다른 어떤 잡념도 없이 한 가지만 생각하는 ‘일념’(一念)을 체험해야 한다. 일념이 이뤄졌다면 고도로 집중하는 ‘무념’(無念)이 다음 단계다. 일념과 무념의 성취를 통해 마침내 삶의 창조자는 자신임을 깨닫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소위 말하는 ‘멍때린다’는 말을 싫어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명상’을 그저 ‘멍때리는’ 행위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일념을 하게 되면 나를 흉보고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돼요. ‘무념’의 상태가 되면 누군가 옆에 와도 모를 정도가 됩니다. 명상은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것인데, 이 지혜를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해 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금강선원은 불교에 관심을 둔 12명의 공부모임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등록신자 5000여명, 주당 1500명이 나오는 강남의 대표적인 사찰로 자리 잡았다. 성인뿐 아니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한때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혜거스님은 “이곳에 와서 앉는 법과 집중하는 법 등 몇 가지를 배우고 집에 가서 스스로 훈련을 한 뒤 성취를 이룬 사람이 많다”며 “보면 외워지고, 들으면 깨우치고, 외우고 나면 안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참선”이라고 했다.
“단순히 종교로서만 기능을 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공부하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 금강선원에 왔을 때 명상 바람이 불었어요. 고3 학생들 17명이 모여서 명상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 15명이 서울대에 갔죠. 참된 명상을 하면 치유하지 못할 게 없어요. 화가 많던 사람은 화가 끊어지고 욕심이 많던 이들은 욕심을 내려놓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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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천재지변과 전쟁, 질병의 ‘삼재’(三災)로 고통받는 시대다. 혜거스님은 “많은 사람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간과하고 있다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상황을 맞았다”며 “어떻게 하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 사유해 보는 것이 필요한 데 명상을 안한 상태에서 갑자기 하려면 허덕이게 된다”고 평소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흔히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혜거스님은 그 시대에 맞는 ‘품격’을 갖추고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이른다. 그는 “정치나 예술 등 분야에서 각자의 그릇에 맞는 품격은 결국 참선과 명상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오는 5월 27일은 불기 2567(2023)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코로나 이후 일상을 회복한 첫해인 만큼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5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화려한 연등행사가 펼쳐졌다. 혜거스님은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용어)를 첫번째로 강조하셨다며 이 말씀을 유념하라고 당부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며 인간의 운명은 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설파하셨죠. 두 번째로는 모든 중생은 평등하다고 가르쳤어요. 마음을 닦는 것이 참선이고 명상이에요. 내가 제일 대장이고 어른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일체중생은 모두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살아갔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