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경기도 고양시 동원예비군 훈련장. 입소식이 열리는 강당에서 교관이 ‘동원 훈련 중 휴대폰을 몰래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내밀었다.
아예 휴대폰을 집에 두고 훈련장으로 나선 기자는 서약서를 백지로 되돌려줬다. 대학 때 예비군 훈련 입소 전 휴대폰을 반납했던 기억 때문이다. 곧이어 강당에 “일과시간 이후에 (휴대폰 사용을) 희망하는 예비군은 행정반에서 사용 가능합니다”라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2박 3일 동원예비군 훈련은 처음이라 몰랐다. 후회막심이다.
참모장이 입장하면서 입소식이 시작됐다. 대령인 참모장 뒤로 중령, 소령 계급장을 단 참모들이 도열했다. 입소식이 끝나자 중대장의 어깨가 느슨해진다.
“1일차엔 정훈교육과 군법 교육, 2일차엔 영점·측정 사격과 주특기 훈련, 3일차엔 작전계획 시행 훈련이 있겠습니다. 1일차는 에어컨이 나오는 강당 안에서 진행되니 폭염이어도 훈련은 진행합니다.”
이날 낮 기온은 34도까지 올라갔다. 온도지수는 32도다. 온도지수의 정확한 이름은 습구흑구온도지수(0.1×건구온도+0.7×습구온도+0.2×흑구온도)다. 외부활동이 가능한 정도를 태양복사열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1950년대 미군이 개발했다.
육군은 규정에 따라 온도지수가 31도를 초과하면 옥외훈련을 제한하고 32도 초과 시엔 경계작전 등 필수적인 활동만 한다.
“북한은 여전히 2015년 지뢰도발 등 끊임없는 도발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훈 교육의 레퍼토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예비군들이 이곳 저곳에서 잠든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도 들린다.
군법교육시간엔 휴대폰 반입 금지에 대한 경고가 재차 반복됐다. “휴대폰 사용 금지만큼은 엄격하게 처리합니다” 이어 예비군도 상관 명령에 불복하면 군법이 적용된다는 엄포가 이어졌다.
이런 경고에서도 스마트폰을 몸에서 떼어놓지 못한 예비군들이 적지 않다. 2일차 사격훈련으로 예비군들이 생활관을 비운 사이 스마트폰이 울려대는 바람이 3명이 휴대폰 불법반입으로 적발됐다. 읍소 끝에 2명은 경고로 끝났지만 “뭐가 문제냐”고 항의하던 1명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훈련 이틀째. 온도계는 36도를 가리켰지만 사격훈련은 계속됐다. 땡볕 속에 방탄헬멧을 쓰고 ‘앞에 총’ 자세로 대기했다. 찜질방에서 털모자 쓰고 아령하는 기분이다. 올해부터 예비군 훈련장 기본총기는 K2다. 작년까지 예비군들이 쓰던 M16은 2.8Kg. 올해 보급된 K2는 3.2Kg이다. 무겁다.
사격을 끝내고 ‘무릎앉아 대기’하는 동안 옆 사로에서 탄피받이가 날아가는 바람에 탄피가 앞으로 튀었다. 중대장이 사격 정지를 지시한 후 직접 사격장으로 내려와 탄피를 찾았다. 얼마하지도 않을 탄피를 왜 저렇게 애지중지할까? “탄피가 비싼가 보지 뭐”라는 비아냥이 들렸다. 옛날 10원짜리도 구리인데 잃어버렸다고 저렇게 찾지는 않았다. 땡볕에서 대기하는 뒷조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중대장이 금방 탄피를 찾았다. 훈련이 재개됐다.
그날 저녁 생활관에 배치된 조교를 데리고 PX를 갔다. 커피, 탄산 1.5L, 아이스크림 등을 가득 담은 봉지를 조교에게 건넸다. 예비군들이 건네는 위문품이다. PX에서 가장 인기있는 군용품은 ‘맛다시’란 이름의 양념장이다. 한 예비군은 20개들이 박스로 사갔다. 집에서 먹어보면 별로일 텐데. 군생활의 추억은 그렇게 이어진다.
마지막날 건설사 로고가 박힌 1970년대에 제작된 군장을 지급받았다. 50년은 됐을 물건인데 어찌나 보관을 잘했는지 새 것 같다. 경탄이 나온다. 군장안에 야전 삽, 수통 등을 채우고 작전계획(유사시 부대의 동선과 작전 내용을 담은 계획)시행 훈련을 받기 위해 숲속 교장으로 이동했다. 어제보다 열기가 많이 식었다. 숲속이라 더위도 덜하다.
마침내 퇴소다. 2박 3일간 친해진 ‘아저씨’들 몇과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주말에 맥주나 한잔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몇이나 올지 모르겠다. 퇴소하던 길에 아저씨 몇몇은 PX에 들려 면제주와 홍삼 등을 박스째 구입했다. 예비군 훈련도 좋은 게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