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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한수도 점칠 수 없는 바둑…인생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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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기자I 2015.07.02 06:41:00

"바둑·인생, 어렵긴 마찬가지
최선 다해 끝까지 가야 알아
제자 이창호에 타이틀 뺏긴 건
쓰라리면서도 행복한 경험
가장 좋아하는 별명 '國手'
엄홍길 대장과 등산도 즐겨"

“바둑판에서 얻은 깨달음이지만 어느 인생이나 근본은 같다.”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이 2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이긴 것”이라고(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62). 다섯 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포 유달기원 문턱을 넘을 때부터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바둑 하나밖에 모르는 인물. 54년간 치열한 승부의 세계서 1935승을 기록, 세계 바둑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다. 1980년대 초중반 국내 기전 전관왕 3회, 1989년 제1회 잉창치(應唱期)배 석권을 포함해 160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자 이창호 등 후배들의 거센 도전에 무관(無冠)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조훈현을 만나 그의 바둑과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2시간여 진행했다.

◇“엄홍길 대장과 등산, 이현세 작가와 골프”

예전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대국을 두느라 바빴다. 시합이 없는 요즘은 시간이 많다. 북한산을 오르거나 동네 주변을 산책한다. 가끔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골프도 친다. 10년 구력에 핸디는 90타 수준. 엄홍길 대장과는 등산을, 이현세 작가와는 골프를 즐긴다. 심심할 때는 인터넷 바둑을 두기도 한다. 조훈현은 “오로바둑에 들어가서 가끔 바둑을 두는데 많이 진다”고 고백했다. 참고로 조훈현이 두는 인터넷 바둑 상위클래스는 대부분 쟁쟁한 프로기사들이다.

최근 바둑과 인생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인플루엔셜)을 펴내면서 좀 바빠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낸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조훈현은 과거 ‘헤비스모커’였다. 1995년 금연하기 전까지 하루에 ‘장미’ 3갑을 피웠단다. 어떤 날은 5갑 이상을 넘기기도 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담배를 물고 산 것이다.

“재작년에 몸이 많이 아팠다. 폐 사진을 찍었는데 의사선생이 ‘암이면 사형선고를 해야 하고 암이 아니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덜컥 암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얼마 못사는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약을 먹고 치료받으며 많이 좋아졌다. 그때 뭐라도 남겨놓자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왕성하게 활동할 때도 책 쓰자는 제의가 많았는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불가능했다.”

조훈현은 수식어가 많은 프로기사다. 바둑황제, 국수(國手), 제비 등.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마음에 들까. 그는 “높여주는 건 좋지만 황제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아무래도 국수가 제일 편하다. 선배나 동년배는 여전히 ‘조 국수’라고 불러준다”고 말했다.

조훈현(사진=김정욱 기자).
◇“바둑올림픽 잉창치배 결승 5국 가장 기억남아”

바둑인생 최고·최악의 대국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승리의 고수인 그도 “패배한 대국은 모두 아프다”고 했다. 특히 마흔셋의 나이에 어린 제자 이창호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긴 것을 두곤 “쓰라리면서도 행복한 경험”이라고 회고했다. “창호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을 때는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어차피 빼앗길 타이틀이라면 직접 키운 제자에게 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역시 한·중·일 최정상 기사들이 맞붙은 1989년 바둑올림픽 ‘잉창치배’ 최종 결승 5국이었다. 조훈현은 이 대회에서 과거 일본 초일류 기사들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둔 중국 철의 수문장 네웨이핑을 꺾었다. “잉창치배 결승 5국이 명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바둑은 당시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 한국이 한 판이라도 이기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중국과 일본의 최정상 기사들을 꺾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조훈현의 우승은 한국바둑의 설움을 한번에 날린 쾌거였다. 지금이야 한·중·일 바둑실력이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예전에는 전혀 달랐다. 1960년대 이야기다. 일본 정상급 기사들이 교류전을 위해 왔는데 한국기사들과는 사실상 지도대국이었다. 다음 해부터 일본 저단진기사들이 찾았지만 국내 최고수가 붙어도 열 판 중 한 판도 이기기 힘들었다. 혹여 한 판이라도 이기면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잘 가르친다고 고수되지 않아…스스로 깨달아야”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바둑과 인생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훈현도 쏟아내는 질문에 바둑과 인생을 별로 구분하지 않고 대답했다. “바둑이나 인생은 다 비슷하다. 어렵기도 마찬가지다. 바둑에서 포석, 정석, 끝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인생도 똑같은 위치에서 어렵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미래는 점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봐야 한다.”

이런 정신은 일본 유학시절 스승인 세고에 선생에게서 배운 것. 조훈현은 “세고에 스승은 나를 제자로 받으면서 ‘바둑을 일본에 전해준 한국에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말이 세월이 갈수록 와 닿더라”며 “일본에 가서 내가 할 일은 바둑두는 것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유학시절 조훈현은 세고에 스승의 원칙을 깨고 불가피하게 내기바둑을 한 번 뒀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 돌아보면 그때 일이 인생에서 가장 억울하지만 조훈현은 “단지 몇백엔의 내기바둑이었지만 그 혹독한 원칙 덕분에 나는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이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일 때 큰 도움이 됐다. “바둑을 가르친다는 건 소용없다. 잘 설명해준다고 그가 최고수가 되는 게 아니다. 창호도 마찬가지였다. 창호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방식이 결국 맞았다. 학원식으로 가르치는 건 선생의 역할이 아니다.”

조훈현(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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