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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멈추나"…끝나지 않는 `악플 잔혹사`

김형환 기자I 2025.02.18 16:04:59

‘악플’ 고통받던 김새론, 16일 세상 떠나
유명인부터 일반인까지 계속되는 악플
‘설리법’ 발의·폐기 반복…발전하는 ‘악플’
전문가 “돈 버는 플랫폼에 책임 부여해야”

[이데일리 김형환 정윤지 기자] 배우 김새론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궁지로 몰았던 가장 큰 요인으로 악성 댓글(악플)이 지목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악플 잔혹사’를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과거 유명인에만 집중됐던 악플은 최근 연예인의 가족, 일반인들에게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악플과 관련한 대책이 매번 흐지부지되는 상황에서 이제라도 인터넷 플랫폼에 책임을 부여하는 등 명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김새론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 뉴시스)
◇최진실부터 설리·김새론까지…일반인들도 ‘고통’

18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6일 오후 4시 54분쯤 서울 성수동2가 소재 주거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2022년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대중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비판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김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알바를 하는 행보, 재개를 위한 연극 출연에도 비난의 댓글을 남겼다. 결국 김씨는 연극 ‘동치미’에서 하차해야만 했고 넷플릭스 ‘사냥개들’에서도 많은 분량이 편집됐다.

연예계 ‘악플 잔혹사’는 이전부터 계속됐다. 국민 배우라고 불렸던 최진실은 지난 2008년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 루머는) 나와 상관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숨졌다. 악플에 고통을 호소하던 가수 설리와 가수 구하라, 배우 이선균, 가수 유니 등이 악플로 고통을 호소하다 우리 곁을 떠나기도 했다.

일반인도 악플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참사에서 유족들에게 대해 온라인상으로 명예훼손한 혐의로 20명이 경찰에 붙잡혀 수사를 받고 있다. 유가족 대표를 맡았던 박한신씨는 “악의적인 표현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가 트라우마에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당시 악성 댓글에 힘들어했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했다. 2020년 10월에는 우울증을 앓던 한 대학생이 자신의 익명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렸다 조롱을 받고 극단 선택하는 일도 있었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잘못을 했다고 해서 재기의 기회도 없이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며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 게임”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가수 강다니엘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튜버 ‘탈덕수용소’(오른쪽)가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한 뒤 변호인과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 놓은 국회에 악플 ‘발전’…전문가 “플랫폼 책임 부여”

계속되는 악플을 멈추기 위해 그간 국회는 각종 법안을 발의했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설리 사망 이후 ‘설리법’이라고 불리는 악플 방지 법안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설리법은 △인터넷 준실명제(본인 확인 거친 아이디·IP주소 공개) △혐오표현 삭제 △온라인 모욕죄 신설 등을 골자로 한다. 법안은 설리 사망 사건 이후 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이같은 법안들이 나왔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가 손을 놓은 사이 악플은 더 악랄해졌다. 과거 글로만 악플을 달던 이들은 이제 ‘사이버 레커’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수사기관 협조를 하지 않는 구글의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유명인에 대한 악성루머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에 대한 허위 영상을 올린 유튜버 ‘탈덕수용소’나 유명 유튜버의 성매매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 ‘뻑가’가 대표적이다.

가짜 영상에 법적 대응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신상정보가 필요한데 유튜브가 이를 제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 때문에 유튜버의 신상을 알기 위해선 미국 법원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야 한다. 미국 법원은 최근 유튜버 ‘과즙세연’이 뻑가에 대한 신상 공개 청구를 일부 승인하기도 했다. 다만 금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거나 여유가 없는 무명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이 이 과정을 밟기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 맞는 국내법 개정과 함께 플랫폼에 강력히 책임을 묻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현재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사이버상 명예훼손 등에 대해 추상적으로 표현된 현행법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가짜뉴스 등으로) 돈을 벌고 있는 플랫폼에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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