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중 한국·터키에만 없는 재정준칙…또 위기 오면 어쩌나

이명철 기자I 2022.06.20 17:41:25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재정준칙 부재 ①
2020년만 해도 전 세계 92개국서 재정준칙 운용
채무·수지·지출·수입 등 재정건전성 목표지표 설정
한국은 여전히 법제화 추진…"재정여력 확보 필요"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국민 세금이 모여 이루는 나라 재정은 `눈먼 돈`으로 치부되곤 한다.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은 재정 지출을 늘리지만 국민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기 어렵다. 일정 요건에 도달하면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재정수지를 개선케 하는 준칙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픽=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대다수 선진국들은 재정수지 등을 기준으로 한 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우리나라와 터키만이 재정준칙을 도입한 경험이 없다. 국가채무가 갈수록 치솟는 상황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등을 통한 재정 정상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정건전성 지표 세워…초국가 준칙도

재정준칙(Fiscal rules)이란 재정 정책에 구체적인 제한을 둬 일정한 목표를 지키도록 하는 재정 운용 제도다. 주로 1990년대부터 선진국들과 국제기구들이 도입하며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유형은 목표지표에 따라 4개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 한도를 제시하거나 단계적 감소 등 제약 조건을 가하는 ‘채무준칙’, 일정 기간 재정수지를 관리하는 ‘수지준칙’, 재정 지출 규모·증가율을 제한하는 ‘지출준칙’, 수입 한도를 설정하는 ‘수입준칙’ 등이다. 보통 두 개의 준칙을 서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목표가 법령 형태가 아니어도 최소 3년 이상 이행이 의무화됐으면 재정준칙으로 간주한다고 평가했다. 정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 중이며 선진국 중에는 한국·터키만 도입 경험이 없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0년 10월 5일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주요국의 재정준칙 도입 사례를 보면 우선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수지·지출준칙을 적용하고 있다. 1990년 제정된 예산집행법에서는 앞으로 5년간 재량 지출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일률적으로 모든 분야 지출을 삭감했다. 현재는 법 만료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에는 재량지출에 대한 법정 상한을 설정해 2012~2030년 동안 직접 지출에 대한 한도를 명시하고 있다.

EU는 회원국들이 공동 준칙을 따르면서 개별국가별 준칙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MAC), 동아프리카 통화연합(EAMU), 동캐리비안 통화연합(ECCU), 서아프리카경제통화연합(WAEMU) 등도 초국가적 재정준칙을 적용한다.

EU의 공동준칙은 수지·지출·채무 부문에 적용하고 있다. 우선 재정적자 비율은 GDP 3% 이하를 유지하고 국가채무 비율은 GDP의 60% 이하거나 해당 수준까지 충분히 감축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총예산이 명목상 균형에 근접하거나 흑자여야 한다.

영국은 수지준칙에 대해 수차례 개정을 진행하며 보완하고 있다. 2019년 도입된 준칙은 공공부문 순투자가 5개년도 중 GDP의 3%를 초과할 수 없고 공공부채 이자 지불금이 정부 수입 6%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채무준칙은 GDP대비 공공부문 순채무 비율을 5개년도 종료시점까지 낮추도록 했다. 2015~2020년을 예로 들면 공공부문 순채무가 2020~2021년까지 매년 축소돼야 하는 식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수지준칙을, 2006년 지출준칙을 각각 도입했다.

아베 내각은 2018년 당시 재정적자의 완만한 흑자 수준 복구 시기를 당초 2020년에서 2025년까지 연장했다. 채무수준이나 채무 감축 속도는 따로 제한을 두진 않았다. 채무 상환과 이자 지급을 제외한 일반회계 지출이 이전 회계연도의 지출을 초과할 수 없는 총량 제한도 있다.

◇풀었다가 조이는 英, 목표치 없는 日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위기가 다가오자 대다수 국가는 경기 부양과 재정 지원을 목적으로 예외조항을 발동하거나 일시 유예, 허용치 수정 등 준칙 예외 또는 일시 중단을 허용했다.

EU는 2020년 3월 처음 예외조항을 발동하고 중기적으로 재정 지속성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평시 예산 요건에서 일시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영국도 2020년 3월 법률로 제정된 재정준칙을 유예했다.

CEMAC·ECCU·WAEMU 등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초국가적 재정준칙의 예외를 적용하거나 목표 달성 시점을 미루는 조치를 취했다.

중요한 점은 코로나19 이후 재정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준칙의 작동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 크게 늘어난 재정 지출을 되돌리기 위해선 법제화된 준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의 유연한 적용과 재정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은 재정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경우 2020년 기준 GDP대비 일반정부 채무 비율이 254%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에 대응할 예외조항을 갖추지 않아 금융위기 등 경기 침체 때마다 준칙 지속성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미국도 예외조항이 없지만 주요 기축통화국이어서 일반 국가와 기준이 다르다.

반면 코로나19로 때 유예를 적용했던 영국은 2020년 10월 포스트 코로나 재정 계획의 일환으로 재정준칙을 복구, 5개년도 세 번째 연도까지 예산의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경제 상황에 맞춘 탄력적인 재정 운용 방식이 중장기 재정 건전성도 도모할 수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도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감안한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황인욱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재정준칙 도입 시에는 총량적인 지출 확대 제한에 목적을 두기 보단 새로운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사전에 확보하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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