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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10개사는 오는 3월 출범하는 뮤지컬제작자협회의 주축 회원사들이다. 아직 첫 발을 내딛지도 않은 협회 명의를 빌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그 만큼 상황이 심각하고, 수습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라며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뮤지컬 제작사들은 얼마나 힘든 걸까.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와 ‘명성황후’의 손익계산서를 통해 뮤지컬계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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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7일 개막한 EMK뮤지컬컴퍼니의 ‘몬테크리스토’. 엄기준, 카이, 신성록, 옥주현, 린아, 이지혜 등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으로 연말연시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이 작품은 12월 5일 공연을 중단한 뒤, 언제 재개할 지 기약이 없다. 정부가 거리두기 2.5단계 연장을 발표할 때마다 공연 중단 기간을 늘리고 있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두 칸 띄어앉기로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면서 “거리두기 2.5단계에서는 공연을 진행하기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EMK에 따르면 ‘몬테크리스토’의 제작비는 약 72억원 수준이다. 제작비는 대관료, 배우 출연료, 스태프 인건비, 무대 세트·의상 비용, 기획·홍보·마케팅 비용, 로열티 등을 합친 금액이다. ‘몬테크리스토’는 LG아트센터에서 총 130회 공연할 예정이었다. 티켓 가격은 6만~15만원으로, 평균 티켓 가격은 약 9만 5000원이다. 공연이 열리는 LG아트센터는 1100석 규모다. 시야방해석 등을 제외하면 판매 가능한 좌석은 1000석 수준으로, ‘두 칸 띄어앉기’를 적용할 경우 최대 300여 석 가량 판매할 수 있다.
‘매진급’인 300장을 판다고 해도 티켓 매출은 약 2850만원에 불과하다. 제작비(약 72억원)를 총 회차수(130회)로 나눈 회차당 손익분기점(BEP)인 약 5540만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거의 매진을 기록해도 2690만원 적자를 본다는 얘기다. 엄 대표는 “두 칸 띄어앉기에서는 커플 관객 등이 크게 감소해 평일 공연의 경우 관람객이 200명이 안 될 때가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객석 점유율이 20% 수준으로 쪼그라들면 회차당 적자 규모는 3000만원대로 불어난다. 당초 계획대로 130회 공연을 ‘두 칸 띄어앉기’로 진행한다면 EMK는 약 40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명성황후’ 이미 20억 투입…“공연 취소가 낫다”
조선 왕조 26대 고종의 왕후인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는 고민 끝에 개막일을 2주 가량 늦췄다. 당초 6일 개막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19일 개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한다면 공연이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 제작사인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수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도저히 답이 없다”며 “두 칸 띄어앉기에서 공연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명성황후’의 상황도 ‘몬테크리스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명성황후’가 공연할 예정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2200여 석 규모의 초대형 극장이다. 하지만 거리두기 2.5단계에서는 사석 등을 제외해 약 600석 정도만 판매할 수 있다. 두 칸 띄어앉기 적용과 급격히 얼어붙은 소비심리 탓에 회차당 티켓 판매량은 300~350장으로 평균 객석 점유율은 15% 안팎에 그쳤다. 평균 티켓 가격은 약 10만원으로, 회차당 매출은 3000만~3500만원 수준이다. 예정대로 65회차 공연을 진행할 경우 총매출은 20억~23억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에이콤은 ‘명성황후’의 제작비가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윤 대표는 “50억원의 제작비도 배우,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인건비를 최소화해야 간신히 맞출 수 있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예정대로 65회차 공연을 전부 진행할 경우 최대 30억원 가량의 손실이 불가피했다. 에이콤은 손실을 줄이려 ‘명성황후’ 공연 취소를 검토 중이다. 현재까지 에이콤이 ‘명성황후’에 투입한 제작비는 약 20억원이다. 공연을 취소해 예술의전당으로부터 5억원 가량의 대관료를 반환받을 경우 15억원 정도만 손해를 보게 된다.
제작비가 100억원에 이르는 신시컴퍼니의 ‘고스트’를 비롯해 쇼노트의 ‘젠틀맨스 가이드’, 오디컴퍼니의 ‘맨 오브 라만차’, 인사이트의 ‘그날들’ 등의 대극장 뮤지컬도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공연을 중단하거나 개막일을 늦췄다.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한 번 공연에 100여 명이 배우·스태프 등이 한꺼번에 투입되는 대극장 뮤지컬의 특성상 ‘두칸 띄어앉기’로는 인건비를 건지기도 어렵다”며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없이는 제작사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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