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
수잔 발라동과 툴루즈 로트렉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신화 속 최고 추남으로 알려져 있는 헤파이스토스는 원래 헤라가 혼자서 만든 아이였다. 제우스가 부인인 헤라를 두고 혼자서 아이를 낳자 화가 난 그녀가 자신도 혼자 아이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던 것.
그렇다고 처음부터 헤파이스토스가 추남이었던 것은 아니다. 의붓아비 제우스와 어머니 헤라의 말싸움에 말려들어 어머니편을 들었고, 화가 난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걷어차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의붓아비의 발길질에 천궁에서 떨어졌고, 그 순간 두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물론 신들은 불사하니 망가지기만 했을 뿐!
| ▲프랑수아 부셰, 헤파이스토스를 방문한 비너스. |
헤파이스토스가 떨어진 섬 렘노스는 대장장이 기술이 좋은 인종이 살고 있었던 섬이었나 보다. 원래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이곳에서 더욱더 세련된 기술을 연마해서 의족을 만들어 자기 다리에 붙였다. 그러나 이전과 똑같은 완벽한 몸이 될 수는 없었고,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지만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헤라는 제우스의 화를 돋울까봐 걱정스러워 제 아들 보는 것도 조심스러워해야 했다. 아무리 여신이라고 해도 의붓아들을 데리고 온 어미처럼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우스는 그런 못난 헤파이스토스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프로디테를 결혼시킨 것일까? 바로 제우스의 최강 무기인 번개와 아이기스란 방패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천하의 미인을 부인으로 얻었건만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프로디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왜 그는 모든 남자들이 침을 흘리는 섹시한 여자를 소홀히 취급한 것일까? 어쩌면 무늬만 신이었던 헤파이스토스에게 아프로디테는 언감생심, 너무도 꿈과 같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만하는 그에게 별로 매력을 못느껴서 한두번쯤 그를 거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거절당한 헤파이스토스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일부러 그녀를 멀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피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말이다.
 | | ▲ 로렌초 디 크레디. 램노스 섬에 떨어진 헤파이스토스 |
|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헤파이스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불륜을 포착하기 위해 아프로디테의 침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청동그물을 쳐놓았고, 결국 불륜현장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던 것! 이 사건은 아프로디테에 대한 헤파이스토스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네거티브 사이드니까!
 | | ▲ 루카 지오르다노. 청동그물에 걸린 아프로디테와 마르스 17세기. |
|
이 신화는 한 예술가와 그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헤파이스토스가 바로 툴루즈 로트렉과 오버랩되는 것이다. 로트렉은 사촌남매 지간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런 근친결혼은 그를 152cm의 키에 상반신이 비대한 난쟁이같은 체구를 가진 허약한 인물로 만들었다.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를 천대했던 것처럼, 로트렉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분신으로 멋지게 커줄 것 같지 않은 아들에게 실망하고 무관심하게 대했다. 대신 로트렉은 헤라보다 더 친근하고 모성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늘 아들걱정이 삶의 전부인 수심이 가득한 여자!
그런 로트렉에게 있어 아프로디테는 수잔 발라동이었다. 세탁부의 딸로 몽마르트르 인상파 화가들의 최고 인기모델이었던 발라동은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였다. 역시 모델과 화가로 만난 로트렉과 발라동, 그는 그녀에게 수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녀의 사생아를 감싸안았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가게 되고, 발라동은 로트렉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원했지만 로트렉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로트렉이 누군가에게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세상에 닳고 닳은 자유분방한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괴감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로트렉은 어떤 특정여자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고 여자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일로 선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여성을 상기시키는 모든 물건을 섹슈얼한 대상으로 취하는 페티시즘적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 | ▲ 앙리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과 그의 사진. |
|
▲
유 경 희(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행정 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 등이 있다. 현재 대학원 최고위과정과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하이브리드적인 미술강좌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