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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의 겨레말]'거시기/거식하다'의 친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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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 기자I 2012.07.12 11:41:25
‘거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해’ 불자! (영화 ‘황산벌’ 중에서)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이 신라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전투 의지를 다지며 하는 말이다. “거시기네 집이서 거시기한다데. 점섬(점심) 먹구 거시기하드라고.” “알았응개 쫌 있다 보드라고잉.” 전라도 아주머니 둘이서 하는 대화이다. 아마도 동네의 어떤 집에서 내일 있을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마치 암호 같지만,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두 아주머니끼리는 충분히 가능한 대화이다.

‘거시기’는 흔히 전라도 사투리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거식하다’와 함께 버젓이 표준어로 올라 있는 말이다. ‘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킬 때, ‘거식하다’는 말하는 중에 표현하려는 형용사나 동사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할 때 쓰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거시기/거식하다’와 그 쓰임과 뜻이 완전히 같은 말들이 있다. ‘거시기’와 같은 말로 ‘거사니, 머시기, 머사니’ 등이 있다. 이들 중 ‘머시기’는 국어사전에 사투리로 올라 있지만, ‘거사니’와 ‘머사니’는 사전에 올라 본 적이 없는 말이다.

으흠… {거사니} 내레 님자한테 한마디 할 이야기가 있수웨. 《방룡국: 상봉》

길쎄 오늘 거 {머사니} 선거 연설 하는 데 가서 말이다.《송병수: 장인》

집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이 {머시기} 허요만 치안대장은 워낙에 사람들헌티 원성을 많이 받았어라우.《송기원: 배소의 꽃》

‘거사니’와 ‘머사니’는 주로 북한과 중국의 동포들이 쓰는 말이며, ‘머시기’는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거식하다’와 같은 말로는 ‘거시기, 거사니, 머시기, 머사니’와 ‘하다’가 결합된, ‘거시기하다, 거사니하다, 머시기하다, 머사니하다’ 등이 있다.

그동안은 있는 땅 놀리기가 {거시기해서} 먹을 것이나 한다고 이것 쬐끔, 저것 쬐끔 들뜨렸지만 그게 틀린 생각이었던 거야. 《이문구: 산너머 남촌》

그럼 순천자본가의 아들이라던 {거사니한} 집안출신인 선전부장동지가? 《지리산의 갈범》

{머시기하면은} 내가 매파 노릇을 조끔 해보리까?《한승원: 해일》

남이 곤해서 거시기하면서 대는 물을 훔쳐오면서도 세상이 {머사니하다고}? 쯔쯔쯔… 《지오: 불꽃은 반짝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거시기’와 ‘거식하다’의 뜻풀이에서 사용한 예문의 ‘거시기’와 ‘거식해서’의 자리에 ‘거사니, 머시기, 머사니’, ‘거시기해서, 거사니해서, 머시기해서, 머사니해서’로 바꾸어 본다고 하더라도 전혀 그 뜻이 바뀌지 않는다.

저기 안방에 {거시기/거사니/머시기/머사니} 좀 있어요?

<겨레말큰사전> 새어휘 팀장 이길재

옷 색깔이 좀 {거식해서/거시기해서/거사니해서/머시기해서/머사니해서} 입고 나가기가 {거식하다}.

‘거시기하다, 거사니/거사니하다, 머사니/머사니하다, 머시기하다’는 아직 사전에 올라 있지 않지만 《겨레말큰사전》에 오를 소중한 겨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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