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22일자 44~45면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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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간 과거 한 장면에선 그들의 네 딸 중 셋째 미희의 결혼식이 한창이다. 여기는 외딴 섬마을 `홍길이네 이발소`. 1944년 일제의 발악이 정점으로 치닫던 종전 직전이다. 둘째 선희를 주축으로 딸들이 즉석에서 결성한 `음란 시스터스`가 `까투리타령`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중 일본군이 몰아닥친다. “오늘 5월9일부로 당 이발소를 군 관할 하에 둘 것을 명한다.” 축제는 끝났다.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공연계에 다시 휘몰아쳤다. 재일교포 2세 작가 정의신(55)의 신작이다. 극을 쓰고 연출했다. 정의신은 그간 `야키니쿠 드래곤`(2008), `적도 아래의 맥베스`(2010), `쥐의 눈물`(2011) 등을 차례로 소개하며 존재를 각인시켜왔다. 이번 `봄의 노래…`는 일제강점기 한 가상의 공간에서 조선과 일본인들이 소통하고 화해하는 내용을 다뤘다. 전작 `야키니쿠…`의 골격을 가져왔지만 `야키니쿠…`가 1970년대 일본이란 환경 속에서 차별받는 한국인의 상처를 드러냈던 것과는 다른 모색이다.
정의신 극의 특징은 포장 없는 정교함에 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조차 일상처럼 서서히 스며든다. 그 저력은 `봄의 노래…`에서도 빛을 낸다. 고달픈 삶에서 희망을 말하는, 척박한 시점을 펼쳐놓고 체념하지 말라는, 아픔과 슬픔을 교차시키며 웃어라 하는 그런 거다. 유머와 엄숙을 오가는 흡입력. 그것이 그의 장기다. 그런데 문제의식까지는 아니다. 착한 일본군을 끌어안는 더 착한 조선인이란 설정 때문이다. 그에게 역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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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패인 서사는 있으나 인물들의 반감은 없다. 그 이유는 이들이 만든 세상이 다분히 비현실적인, 마치 꿈같은 이상향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폭로해야 할 사건보다 보듬어야 할 사연이 많고, 비애는 있되 좌절은 없다.
정태화·서상원·박수영·고수희·염혜란 등 `정의신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누구랄 것 없이 뚜렷한 개성과 역할로 극을 메운다. 한두 차례 연극상을 석권한 배우들이다. 이들 전부가 무대에 나와 한바탕 난장을 펴는 장면들이 백미다. 미희의 결혼식, 정희가 체포될 때, 진희와 시노다가 앞날을 약속한 순간. 정의신 만의 탁월함은 여기에 있다. 죽은 딸 생각에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는 옆에서 `까투리타령`을 다시 불러대며 객석을 웃기는 역설적 풍경. 그의 작품은 가장 웃길 때 가장 슬프다. 7월1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