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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학점 인플레 심각…서울대·연대·고대 전공수업 절반이 'A'

김성훈 기자I 2017.07.06 05:00:00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학점 퍼주기'' 현상 심각
SKY 전공과목 A학점 비율 49.3%…전국 평균보다 15.7%P↑
학점 제한에 영어 수업 수강 등 온갓 수단 동원해 학점 올려
학점 퍼주기로 학업성취도 지표 의미 퇴색 지적도

[이데일리 김성훈 김정현 이슬기 기자]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장모(22·여)씨는 이번 학기 수강한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지난 학기에도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A학점이었다. 장씨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학점에 예민해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한다”며 “점수가 잘 나오는 교수들의 수업 정보를 공유하거나 점수가 안 나올 것 같은 수업은 학기 중간에 수강을 포기하고 재수강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소위 ‘SKY’대학의 ‘학점 퍼주기’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들이 A학점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음에도 학생들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빠져나간 탓에 전체 학점의 절반이 ‘A’다. 졸업 후 불이익을 우려한 학생과, 취업과 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자들을 외면하지 못한 교수들이 합작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 서울대 전공수업 55.2%가 A학점

2014~2016년 전공과목 A학점 비율(자료=대학알리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운영하는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가 내놓은 ‘전공과목 성적평가 분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의 A학점 비율은 49.3%로 집계됐다. 전체 수강생 중 절반 가량에게 A 학점을 준 셈이다.

전국 대학교의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이 33.6%인 것과 비교하면 15.7%나 높다.

학교별로 서울대가 55.2%로 A학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고려대가 48.5%, 연세대가 44.1%다.

특히 최근 3년간 이들 세 학교의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은 △2014년 46.5% △2015년 47.75% △2016년 49.3%로 해마다 오름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전국 대학교 평균은 0.29% 올랐다.

서울대는 교수들에게 A학점을 받는 학생 비율을 20~30%로 할 것을 권장하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교양과목의 경우 A·B 학점을 받는 학생 수가 전체 수강 인원의 70%를 넘길 수 없다. 그러나 전공과목에는 이런 제한마저도 없다. 재수강 횟수도 제한이 없는데다 중간고사 성적에 따라 학기 중간에 수강 포기도 가능하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전공과목은 A학점을 전체의 3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학점비율 제한이 없이 절대평가로 진행되는 영어로 진행하는 전공수업이나 A학점 제한이 40%인 수강생 20명 미만 강의와 같이 빈틈을 찾아 다니는 학생들 때문에 A학점 인플레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려대 3학년 홍모(24)씨는 “영어 전공수업은 거의 모든 수강생이 A학점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며 “학생들 대부분이 영어 전공수업을 들으려 하다 보니 같은 시각 열린 다른 수업 수강신청은 텅텅 빌 정도”고 말했다.

◇ 학점 퍼주기로 학업성취도 지표 의미 퇴색

서울 주요 대학의 학점 퍼주기 현상을 바라보는 학생과 교수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연세대 3학년 김모(25)씨는 “학점을 산술적으로만 나눠서 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보통 취업을 할 때 경쟁 상대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만 높은 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도 그레이드 인플레이션(Grade Inflation)이라고 해서 명문대일수록 학점들이 좋은 경향이 이전부터 있어왔다”며 “학점에 연연하지 않은 학습 환경을 만들려는 취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도를 넘어선 학점 퍼주기에 학점이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잣대로서 변별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서울대 4학년 김모(24)씨는 “학점을 후하게 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인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 등을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하는 성적에 대한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학점 퍼주기 현상이 이어진다면 나중에 학점 자체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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