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사회적 약자…'남혐'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

안혜신 기자I 2018.12.05 06:00:00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인터뷰
"페미니즘, 나보다 덜 가진 사람 입장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미투운동 흐지부지 아쉽지만 사회적 변화 의미있어"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남혐(남성 혐오)’은 단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힘의 균형 자체가 맞지 않는 상황에서 ‘여혐’과 대립구도로 남혐을 거론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나윤경(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이수역 사건’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여성과 남성 간 성대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여혐과 남혐의 대립 구도로 몰고 가고 있는 것에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

나 원장은 “상호혐오가 성립하려면 프랑스나 영국처럼 객관적으로 동등하거나 비슷한 힘을 가진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라면서 “아직 명백히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가 남성에 대한 혐오와 1:1의 개념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여성의 성평등 요구에 대해 ‘여성우월주의’나 남성 혐오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거 흑인들이 외쳤던 인종차별 반대에 대해 ‘백인혐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는 것이다.

나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이수역 사건에 대해서도 “타고난 신체적 조건 자체가 다른 남성과 여성 간에는 싸움이 성립될 수 없다”면서 “여자가 말을 심하게 했다고 해서 남자의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이름처럼 양성평등 교육 및 성인지 교육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진흥시켜 사회의 남녀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최근처럼 여성과 남성간 성대결이 극심한 상황에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 원장은 “양성평등이라는 기계적 개념 때문에 남혐이나 여혐과 같은 단어가 생겨난 것”이라면서 “양성평등이란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얘기할 때 성별, 즉 여성과 남성간 타고난 체급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미니즘은 소수성 깨닫게 해주는 능력”

나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다. 명함에도 나윤경이 아닌 부모의 성을 동시에 쓰는 ‘나임윤경’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연세대 교육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성인여성교육 석사학위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스트 원조격인 나 원장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나 원장은 페미니즘에 대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 자원의 양은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페미니즘이란 상대적으로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원이 적은 사람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내가 제 3세계에서 온 이주여성이 아니더라도, 페미니즘은 그 여성이 원하는 욕망이나 욕구가 무엇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 원장은 “페미니즘은 단순히 젠더 문제에 국한돼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자원을 덜 가지고 있는 입장에 놓도록 해 소수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장은 내년부터 양평원 교육 내용을 대대적으로 손질할 예정이다. 공공기관 등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나 원장은 “그동안은 군인, 대기업 재직자 등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을 진행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인식을 바꾸려기보다는 공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처벌한다는 엄격성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하려 한다”고 말했다. 즉, 성과 관련한 행동에 있어서 ‘규칙이니 지켜야한다’는 개념을 주입해 직접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나 원장은 올 한해 최대 화두였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들어 거셌던 미투 바람이 한 풀 꺾이면서 ‘현실은 변한게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 원장은 “미투 운동이 다소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 이후로 소수일지라도 분명히 사회는 바뀌고 있다”면서 “작더라도 분명히 새 세포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것이 새로운 영향을 미쳐 사회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 의미는 충분히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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